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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김대건·최양업 신부님 탄생

 

 

올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탄생 200주년의 본달인 8월을 맞이했습니다. 8월은 김대건 신부님과 관련이 깊습니다. 일단 그분 생일인 8월 21일이 한여름인 8월에 들어가 있고,그분의 서품 기념일이 8월 17일입니다. 사제 서품을 받은 후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함께 라파엘호를 출범시킨날이 8월 말일인 31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나서 옥중에서 마지막 편지를 쓰신 날이 8월 26일이고, 조선 교우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한글 편지 역시 그즈음에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볼 때 김대건 신부님은 한 여름인 8월의 사나이요, 더위와 고난을 물리치는 신앙의 용사라
하겠습니다.

 

신부님은 신학생 시절 에리곤호의 통역 임무를 통해 신덕(信德)이 더하여졌고, 부제 서품 후에 성직자가 되어 용덕(勇德)이 더하여졌습니다. 이 신덕과 용덕을 합쳐 놓으면 바로 신앙의 용사가 되고, 주님의 용사가 됩니다. 가톨릭 성가 287번 중에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 노래’가 있습니다. 그 비유의 뜻을 잘 되새겨야 최민순 신부님이 가사를 지은 본뜻을 알 수 있습니다.
“♪서라벌 옛터전에 연꽃이 이울어라. 선비네 흰 옷자락 어둠에 짙어갈 제 진리의 찬란한 빛 그 몸에 담뿍 안고 한 떨기 무궁화로 피어난 님이시여” 경주 서라벌의 불교 국가로 통일을 이룬 신라의 시대도 지나가고, 선비의 나라 유교의 시대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때, 복음을 안고 들어온 사제는 바로 한 송이 무궁화로 상징되는 한국인 첫 사제입니다. ‘지지 않는 꽃’이라는 뜻의 무궁화(無窮花)로 김대건 신부님을 표현한 것은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3절에 보면 “숭가리 언저리에 고달픈 몸이어도 황해의 노도엔들 꺾일 줄 있을소냐”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숭가리’는 송화강의 만주식 발음이라고 합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육로로 조선을 오갈 때 반드시 송화강을 지나 그 언저리에서 쉬기도 하고 강을 바라보기도 하셨을 것입니다. 때로는 노곤한 여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돛단배를 끌고 황해를 건널 때 그 ‘성난 물결(노도, 怒濤)’도 김대건 신부님의 선교 여정을 가로막지는 못했습니다.

 

 

8월에 태어난 김대건 신부님은 9월에 천상에서 다시 태어나십니다. 신앙의 용사로서 김대건 신부님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증언 가운데 사형 직전의 마지막 강론만큼 강렬한 것도 없습니다. “나는 이제 마지막 시간을 맞이하였으니 여러분은 내 말을 똑똑히 들으십시오. 내가 외국인들과 교섭을 한 것은 내 종교를 위해서였고 내 천주를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죽은 뒤에 행복하기를 원하면 천주교를 믿으십시오. 천주께서는 당신을 무시한 자들에게는 영원한 벌을 주시는 까닭입니다.” 김대건 신부님 탄생의 달 8월을 맞이하여 삶과 죽음, 부활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봅니다.

조한건 프란치스코 신부 | 한국교회사연구소장

 

< 출처 : 서울주보 [특집] 김대건·최양업 신부님 탄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