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말씀

대림 제2주일 강론글

<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탈무드(유대인 율법학자들이 사회의 모든 사상에 대하여 구전, 해설한 것을 집대성한 책)에 시집가는 딸에게 읽어 주는 구절이 있다고 합니다.

“딸아! 네가 남편을 왕처럼 존경한다면 너는 여왕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남편을 돈이나 벌어 오는 머슴처럼 여긴다면 너는 하녀로 둔갑할 것이다. 네가 지나친 자존심으로 남편을 무시하면 남편은 폭력을 쓰는 폭군으로 변할 것이다. 남편의 친구들 앞에서 남편을 깨끗하게 단장시켜라. 그리고 남편에게 정성을 다해 대답하면 남편은 너를 소중히 여길 것이다. 남편을 소중하게 여기고 가정에 마음을 두면 너의 머리에 영광의 관을 쓰게 될 것이다.”

또한 남편에게도 주는 구절이 있다고 하네요.

“남편이 아내를 소중히 여길 때 아내는 현모양처가 된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가 가정의 훌륭한 주인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평생 남편에게 무시당한 아내가 어느 날 현모양처가 되길 바란다면 그것은 씨앗은 뿌리지 않고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

사람의 가치를 높이고 낮추는 것은 상대방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내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생각은 이런 것입니다.

‘네가 해주면 나도 어떻게 해보겠다.’

하지만 상대방은 이러한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방 역시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먼저 행동을 해야 하는데, 상대가 먼저 하기를 눈치보고 있으니 그 사이에 어떤 진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상대방이 내게 무엇인가 해주기를 기대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상대방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주었을 때 세상의 변화도 이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들은 이 세상에 강림하시는 예수님을 준비하는 세례자 요한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 준비의 시작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런데 그는 말만 하지 않습니다.

또 상대방의 실천만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이 먼저 그 모범을 보이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그는 풀 한 포기 찾기가 힘든 유다 광야에서 낙타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두른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또한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 뿐이었습니다.

만약 요즘 방영되는 ‘세상의 이런 일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그 당시에도 있었다면 분명히 그 모습이 전 세계로 방송될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왜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살았을까요?

예수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이렇게 기인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 세상의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 일 인만큼, 세상 것에 신경 쓰기보다는 회개하는데 더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을 당신의 몸으로 직접 보여주는 것입니다.

대림초의 불이 또 하나 켜졌습니다.

그만큼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자세도 바뀌어야 합니다.

즉, 구태의연하게 사는 소극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을 찾아가는 적극적인 기다림을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결심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으로 힘차게 걸어가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배우자에게 또는 가족에게 먼저 ‘사랑합니다.’라고 말씀하세요.

촛불, 심장, 불꽃, 사랑, 애인, 로맨스, 화재, 레드, 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