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을 맞이해서
2191225a 성탄을 맞이해서
지금이 최악은 아니다 (앤드류 매튜스, ‘즐겨야 이긴다’ 중에서)
누구나 삶이 지독히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 자기 혼자만 남은 듯하고 청구서는 쌓이며, 직장은 잃고, 사랑하는 사람도 떠났습니다.
눈앞이 막막해 막막해지면서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숱한 문제가 매설된 지뢰밭 같은 미래를 떠올리며, 누구도 지금과 같은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 한탄합니다.
로버트 슐러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나는 즐겨합니다.
그들의 대화는 이렇게 이어졌습니다.
먼저 남자가 말했습니다.
“다 끝났어요. 난 끝장이에요. 돈을 몽땅 날렸어요. 전부 잃었다고요.”
슐러가 물었습니다.
“여전히 볼 수는 있나요?”
“네, 아직 볼 수 있어요.”
“여전히 걸을 수는 있나요?”
“네. 아직 걸을 수도 있죠.”
“내게 전화한 것을 보니 분명 들을 수도 있겠죠?”
“네. 물론이죠.”
“그럼, 모든 게 그대로군요. 잃은 건 당신 돈뿐이군요.”
누군가 이렇게 물을 수도 있습니다.
“일어날 수 있는 일 중에 최악의 일은 뭔가요? 그런 일이 일어나도 살 수 있을까요?” 최악의 일이 일어난다면 몹시 고통스럽겠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다음 질문이 이어집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배우는 게 있을까요?”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많은 경우 어려운 시기에도 배우는 바가 있습니다.
시련은 삶의 균형을 이루게 하고, 고통 중에서도 배우는 바가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어려운 시기를 배움의 기회로 삼는 법입니다.
이들은 턱을 치켜 들고 얼굴에 웃음을 띤 채 상황이 곧 좋아질 것을 믿으며, 시련에서 빠져나올 때에는 한층 성숙한 사람이 됩니다.
아울러 자신을 더 사랑하는 가장 경이로운 방법 가운데 하나는, 누군가를 위해 뭔가 해 주는 것입니다.
지나친 걱정과 자기 연민은 자신만 생각하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꽃을 보내든, 페인트칠을 도와주든, 말동무가 되어 주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무엇이든 해보십시오.
그 순간 당신도 행복해집니다.
성탄은 이런 행복을 느끼는 날인 것 같습니다.
사실 너무나 볼 품 없는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
너무나 초라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전해주시는 은총은 수 천 년을 거쳐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전해집니다.
동방 박사들도 수 천키로 떨어진 곳에서 별을 보고 경배하러 오듯이 우리도 그 별을 보고 이 세상을 따뜻하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