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말씀

남을 위한 삶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영국의 거부였던 피츠제럴드는 아이가 열 살이 넘었을 때 아내를 잃었습니다.

상심이 컸던 그는 아들에게 더욱 정성을 쏟아 부었지만, 애석하게도 아들마저 병을 앓다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고 말았어요.

홀로 된 피츠제럴드는 거장들의 예술작품을 수집하여 그 슬픔을 잊으려 노력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피츠제럴드도 병으로 죽게 되었는데,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유언에 재산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밝혀 두었습니다.

즉, 그는 자신의 모든 소장품을 경매에 붙이라고 지시했던 것이에요.

이 수백만 파운드에 달하는 소장품들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모두 대단한 것들이었으므로 사려는 사람들이 예상대로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예술품들은 경매 전에 관람할 수 있도록 전시되었는데 그 중에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그림 한 점이 있었어요.

그것은 지방의 무명 화가가 피츠제럴드의 외아들을 그린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제목의 보잘것없는 그림이었습니다.

뜻밖에 제일 먼저 경매에 붙여진 것은 바로 이 그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그림은 아무도 입찰하려 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별로 알려진 화가의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초라한 모습의 한 노인이 손을 들더니 조용히 말합니다.

“제가 그 그림을 사면 안 될까요?”

그는 피츠제럴드의 아들을 어릴 때부터 돌보았던 늙은 하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돈을 모두 털어 그림을 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변호사는 경매를 중지시킨 다음 큰소리로 피츠제럴드의 유언장을 읽는 것이었어요.

“누구든지 내 아들의 그림을 사는 이가 모든 소장품을 가질 것입니다. 이 그림을 선택한다면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니 모든 것을 가질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름 있는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그래서 이름 없는 화가의 작품 따위는 관심조차 없었지요.

하지만 피츠제럴드는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에게 그 모든 작품을 건네고 싶었습니다.

즉,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아들의 그림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

이것처럼 어려운 것이 있을까요?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습을 기억한다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은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남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즉, 상대방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도 나오지요.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다고요.

그래서 외딴곳으로 쉬러 가십니다.

그런데 그곳으로도 사람들이 따라옵니다.

짜증이 날만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시고 행동하시지요.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그 사람의 입장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왜 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할까요?

그러면서도 상대방의 마음은 도통 모르겠다고 힘 있게 말하고 있으니, 주님께서 그런 우리들을 보시고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내 입장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