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말씀

사순 제3주간 월요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전에 운전을 하면서 어디를 가는데 이상하게도 길이 막히는 것입니다.

길이 막힐 시간도 아닙니다.

문득 ‘사고가 났나? 아니면 도로 보수 공사 중인가? ’ 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튼 거북이 걸음처럼 천천히 앞으로 조금씩 전진하던 중 드디어 길이 막히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자동차 두 대가 도로 한 차선을 막고 있었지요.

아마도 앞 차가 갑자기 정지를 했고 그래서 뒤 따르던 차가 앞 차와 접촉 사고를 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던지 두 차의 운전수가 나와서 서로 뭐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네요.

그런데 그들을 보는 순간, 미움과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왜 도로를 막아서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는지, 더군다나 목적지까지 가기에도 무척 바쁜데 저 차들은 왜 사고가 나서 나를 힘들게 하는지…….

뭐 이런 미움과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더군요.

하지만 잠시 뒤, 이렇게 반대의 생각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아~ 나는 행운아구나. 만약 내가 저 사고 차의 당사자라면 어떠했을까?’

약속 시간에 맞춰서 갈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사고 처리로 인해서 많은 시간을 낭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 큰 사고가 난다면 병원에 가야 하는 일까지 생기겠지요.

그런데 제게 그러한 일이 생기지 않고 지금 단지 조금 천천히 갈 뿐이니 얼마나 큰 행운아입니까?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스스로를 행운아로, 반대로 불행아로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불행아의 삶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도 불행아로 만들려고 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고향 사람들 역시 이 불행아의 길을 걷습니다.

그들은 좋은 말과 놀라운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지요.

그들은 예수님을 단순히 목수 일을 하던 요셉의 아들 정도로만 생각하면서 스스로 불행아의 길을 걸음과 동시에, 예수님도 불행아로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이러한 고향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는 사렙타 마을의 과부 이야기와 나병환자였던 나아만 장수의 이야기를 예를 들면서 하느님의 선택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이에 그들은 더 큰 불행아의 길을 걸어가려고 합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난 마을 사람들은 고을 끝의 벼랑까지 끌고 가서 거기에서 떨어뜨려 죽이려고 하지요.

지금 내 자신도 이러한 불행아의 길을 걷는 것은 아닐까요?

내 곁에 있는 이웃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또한 미움과 부정적인 마음으로 상대방을 거부한다면 그것이 바로 불행아의 길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길을 걷지 않기 위해서는 겸손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무릎을 꿇고 어렵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서 있다면 과연 예수님을 볼 수가 있을까요?

우리 역시 예수님 옆에서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어렵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가질 때에야 예수님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과 함께 하는 내가 얼마나 큰 행운아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걸요?

 

신심 서적 한 권을 택해서 오늘부터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