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말씀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부지런하고 나무를 가꾸는 솜씨가 탁월한 어떤 형제님께서 계셨습니다.

이 형제님께서는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의 탁월한 나무 가꾸는 솜씨로 그의 과일나무에는 크고 맛있는 과일이 주렁주렁 열렸지요.

어느 날 그의 동생이 과수원에 놀러와 크고 맛있는 사과가 가득 열린 나무를 보며 감탄하자, 형제님께서는 동생에게 제일 좋은 사과나무 한 그루를 선물로 주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이 사과나무는 우리 정원에서 가장 좋은 것이니 잘 가꾸도록 하렴.”

집으로 돌아온 동생은 그 나무를 어디에 심을 지 고민했지요.

바람이 잘 불고, 따뜻한 햇살이 드는 대문 옆에 심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몰래 따 먹을 것 같았습니다.

고민 끝에 그는 아무도 나무가 있으리라 생각지 못한 뒷마당에 사과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 이듬해가 되어도 나무는 꽃을 피우지 않았고, 또 한 개의 열매도 맺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단 한 개의 열매도 맺지 않는 것을 본 동생은 형에게 조롱을 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형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지요.

“형이 준 나무는 3년이 다 되도록 잎사귀 외에는 아무것도 나지 않아. 혹시 나를 놀리려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를 준 거 아냐?”

이 말을 듣고 나무를 살피러 간 형은 뒷마당에 있는 나무를 보고는 동생을 꾸짖습니다.

“너는 햇살과 바람이 전혀 들지 않는 곳에 나무를 심고 어떻게 꽃과 열매가 맺히길 바라니? 또 흑심 가득한 마음으로 어떻게 풍성한 수확이 있길 바랄 수가 있겠니?”

동생의 욕심.

어쩌면 우리들의 욕심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가장 좋은 것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혹시 그 과일을 따 먹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에 가장 안 좋은 사과나무로 만들어 버리는 그 동생처럼, 이기심을 간직하면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좋은 것들을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오늘 복음에서 왕실 관리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자기 아들을 와서 고쳐 달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말씀 한마디만 건네시지요.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예수님께서 손을 대어서 고쳤다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았습니까?

심지어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기까지 한다는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집에 가시지 않고 단지 “가거라.”는 말만 하니 그 왕실 관리가 얼마나 실망을 했을까요?

만약 제가 이 입장이라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라도 예수님을 끌고 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서 집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려가는 도중에 아이가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됩니다.

이 왕실 관리의 믿음.

이 믿음이 바로 앞선 이야기에 등장하는 동생과는 전혀 다른 차이를 보이지요.

그 동생은 이 믿음이라는 좋은 땅에 사과나무를 심은 것이 아니라, ‘남들이 따 먹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의심이라는 땅에 사과나무를 심었지요.

더군다나 자기만 그 사과나무를 몽땅 차지하겠다는 욕심이 더해져서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사과를 오히려 하나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왕실 관리는 달랐습니다.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 때문에 개인적인 욕심으로 조르는 행동을 보이지 않고 단지 믿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이 가장 원했던 아들의 치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지금 나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총과 사랑을 어떤 땅에 심고 있나요?

믿음이라는 좋은 땅이 아니라, 의심이라는 가장 나쁜 땅에 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오히려 하나도 얻지 못하고, 계속해서 주님께 원망만 던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사순시기를 살고 있는 지금 내 자신을 다시금 되돌아 볼 수 있는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의심을 버립시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여러분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