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말씀

사순 제5주간 화요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인기 종목이지만, 외국에서 특히 미국과 캐나다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 중에 하나는 바로 아이스하키일 것입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이스하키 선수 중에서 실력이 있는 사람은 팬들의 큰 사랑을 받는 것은 물론 큰 부와 명예를 차지하게 되지요.

캐나다의 전설적인 아이스하키 선수 중에서 ‘웨인 그레츠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1999년 은퇴하기 전까지 20여 년 동안 아이스하키의 모든 역사를 바꿔 놓았다고 합니다.

정규 리그에서 894골을 넣어 최다 득점을 올렸고, 1963개의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9번이나 최우수 선수로 뽑혔다니 역사를 바꿔 놓았다고 말할 수가 있겠지요?

아마 이러한 기록을 남길 사람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는 평까지 받을 정도였지요.

이러한 그에게 한 스포츠 기자가 묻습니다.

“훌륭한 선수가 된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대부분의 선수는 퍽(구기 종목으로 친다면 ‘공’ 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갑니다. 하지만 저는 바로 다음 순간 퍽이 튈 곳으로 갑니다.”

당장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곧 퍽이 위치할 곳으로 가는 것.

이런 간발의 차이가 그를 최고의 아이스하키 선수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조금만 먼저 움직이는 것.

그것이 훌륭한 선수로 그리고 최고의 선수로 만든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들의 삶도 이렇지 않을까요?

조금만 앞을 내다보면 더 좋은 삶, 더 풍요로운 삶을 만날 수 있는데, 지금 당장의 일만에 얽매이다 보니 항상 힘들다고만 말하는 것은 아닌지요?

물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현재에 충실한 모습은 어쩌면 집착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따라서 조금만 더 앞을 바라보고, 조금만 더 노력하는 모습들을 간직하고 있을 때, 비로소 행복을 내 것으로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로써 당신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즉, 수난과 고통을 당하신 뒤에 십자가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당신에게 다가올 고통과 죽음을 피하지 않으십니다.

그 과정이 너무나도 괴롭고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아셨고,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지위를 통해서 충분히 피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은 그 수난과 죽음에만 머무르시지 않습니다.

바로 그 뒤에 있는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신다는 것이지요.

반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 뒤의 모습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지금 당장 안식일 법을 어기는 예수님, 자신들과 의견 충돌을 하는 예수님,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는 예수님을 지금 당장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만을 생각하지요.

바둑을 두시는 분들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몇 수 뒤를 바라보아야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라고…….

주님을 잘 따르는 분 역시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내게 찾아온 현상만을 가지고 실망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다가올 주님의 손길을 바라볼 수 있어야 주님을 잘 따르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언제나 아버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만 하신다고 합니다.

우리 역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만 했으면 합니다.

몇 수 뒤를 바라보면서….

 

일이 잘못되었다고 실망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