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 주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요즘 서점에서는 여러 장르 중에서도 자기 계발서가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라는 것을 자기의 단어로 만들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계발 할 수 있는 수많은 지침과 법칙을 전달해주는 이 책들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변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봐도 성공했다는 사람을 만나기란 그렇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교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밤 중에 높은 곳에서 창밖을 보십시오.
빨간 십자가가 얼마나 많은지요? 또한 산에 가면 얼마나 많은 절이 있습니까?
그리고 성당 역시도 점점 그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각 종교(사이비 종교 제외)에서 나쁜 범죄 행위를 가르치지는 않을 텐데, 이 세상은 왜 변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종교가 늘어날수록 착한 사람들도 늘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이 사회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범죄가 더욱 더 기승을 부립니다.
이렇게 변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실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계발서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안에 있는 지침과 법칙을 실행해야 하는 것이며, 선(善)으로 가득한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종교가 제시한 선한 행동들을 실행할 때에야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실행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은 변함이 없는 아니 어쩌면 더욱 더 나쁜 상황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들은 ‘성주간’을 시작합니다.
성주간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성토요일’까지의 한 주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기간 동안 우리의 구원을 위해 수난과 죽음까지도 피하지 않는 예수님의 모범을 깊이 묵상할 수 있게 됩니다.
이로써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그 지침을 주님으로부터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배움만으로 그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실천을 통해서만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 바로 이 세상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만약 예수님 말씀에 대한 실천 없이 주님께서 알아서 주기만을 바라면서 산다면, 우리들은 과거에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를 외치며 환영했다가 며칠 뒤에는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악을 써 가면서 반대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즉,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맞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반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고, 예수님을 도왔던 사람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사랑을 끝까지 실천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는 가장 비참한 상태에서도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가장 큰 선물을 보장받게 됩니다.
성주간의 시작에 선 오늘, 우리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있었는지를 반성해 보았으면 합니다.
듣기만 하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는 절대로 우리 곁에 오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