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월요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미국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선생님이 교실 복도를 걷다가 얼굴이 갈색인 동양계 학생이 흑인 학생에게 ‘초콜릿!’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신체적인 약점을 꼬집어 별명을 삼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 선생님은 흑인 아이를 초콜릿이라고 부른 아이를 불러 세우고는 엄한 표정으로 그 아이에게 물었어요.
“그 아이에게 초콜릿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뭐지?”
그러자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했어요.
“그 애는 제 친구거든요. 그 아이와 얼굴색이 흰 토니,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을 다른 아이들이 삼총사라고 부르지요.”
선생님은 맹랑하게 대답하는 이 아이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래? 그러면 네 친구들은 너를 뭐라고 부르지?”
아이는 즉시 대답했습니다.
“코코아요.”
선생님은 피부색에 빗대어 부르는 별명이 듣기에 거북하지 않느냐고 묻자 아이가 대답합니다.
“아무렇지도 않아요. 제 얼굴색은 코코아 색과 정말로 비슷한걸요!”
선생님은 자기의 얼굴색이 코코아 색이라고 태연히 말하는 아이가 의아스러웠어요.
그는 아이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너희들은 토니를 무어라고 부르지?”
아이는 빙그레 웃으며 답해요.
“눈송이요.”
선생님은 처음에 아이들이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었지요.
즉, 신체적인 약점을 가지고 별명을 붙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떤 편견 없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편견으로 그런 별명을 불렀던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서 그렇게 별명을 자신 있게 불렀던 것이지요.
결국 아이들이 편견을 가진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눈과 마음속에 편견의 씨앗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편견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학력이 높아야 하고, 능력과 재주가 많아야 인정을 해주지요.
그러다보니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부분의 지도 계층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소위 엘리트라고 하는 일류 학벌의 출신들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들 중의 많은 이들이 신문 지면을 채우고 있는 각종 비리, 불법거래, 뇌물 수수와 호화사치, 벤처사기, 온갖 부도덕과 부패 등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좋은 집안과 좋은 학벌을 가지고 있었던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의 말은 무조건 옳다고 믿지요.
대신 형편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어떤 특별한 교육을 받지도 않았던 예수님을 거부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합니까?
좋은 집안과 좋은 학벌의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의 말과 행동은 모두 거짓이었으며, 하느님의 아드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는 커다란 죄를 짓게 되지요.
이제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편견의 그물들을 걷어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그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바로 그 순간 이미 우리 곁에 있는 하느님 나라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