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말씀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어느 마을에서 넓은 도로를 만들려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을의 거대한 돌산이 방해가 되는 것이었어요.

설계사는 이 산에 터널을 뚫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깊게 판 구덩이에 다이너마이트를 넣은 뒤 폭파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어요.

모든 주민이 대피한 줄 알았는데 한 아이가 폭파 지점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이는 지금이 위험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곳에 놓인 예쁜 돌멩이 하나를 보고서 달려갔던 것이지요.

사람들은 당황에서 아이에게 어서 이쪽으로 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어른들의 그 모습을 보고서는 오지 않는 것이었어요.

오히려 어른들이 무서웠는지 사람들이 없는 그러나 곧 폭파될 지점으로 더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어요?

사람들은 그 모습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지요.

바로 그 순간 아이의 엄마가 나타났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향해서 무릎을 꿇고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활짝 벌렸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재빨리 달려와 엄마 품에 와락 안기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위험에서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위협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이를 안정시키고 편안함으로 인도할 수 있는 엄마의 품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 엄마도 답답한 마음에 “너 빨리 안와? 너 죽고 싶어?”하면서 위협의 말을 던졌다면 아이는 겁에 질려서 엄마에게 달려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편안한 엄마의 품을 보았기 때문에, 위험이 가득한 폭파될 지점의 정반대로 다시 나올 수 있었던 것이지요.

예수님의 부활을 떠올려 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엄마와 같은 모습을 보였지요. 분명히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심지어 제자들까지도 도망감으로써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더욱 더 쓸쓸하게 만들었지요.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대한 죄책감으로 힘들어 했을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먼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에게 나타나서 하신 첫 마디는 바로 이것이었지요.

“평안하냐?”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써 당신에게 죄를 범한 사람들을 꾸짖으셔도 그 누구도 아무 말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정반대의 모습인 사랑으로써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배반했던 모든 사람들은 이 사랑에 감동을 받았고, 예수님께 방향을 돌려서 예수님의 품 안에 안겼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은 과연 나의 이웃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섰었는지를 반성하게 됩니다.

혹시 나에게 잘못한 사람에게 그 사람도 똑같이 당해야 한다고 하면서 어떤 복수심을 드러냈던 것은 아닌가요?

그래서 그 사람과 더욱 더 먼 거리가 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제 편안한 예수님의 품을 우리들의 가슴에도 담아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우리도 주님처럼 사람들을 편안하게 안아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