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말씀 , 알림목록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도시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을 받던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도시 생활이 그렇게 만족스럽지가 않았어요.

그러면서 도시를 떠나서 시골에서 생활하고 싶은 충동이 점점 커져만 갔고, 결국 그는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서 시골로 내려왔습니다.

공기 맑고, 사람들의 후한 인심이 너무나 좋았고, 그래서 시골에 잘 내려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지요.

시골의 생활은 자신에게 너무나 낯선 것이었습니다.

화단을 가꾸는 것도, 밭농사를 짓는 것도, 그 밖의 모든 일들이 낯설고 그래서 너무나 힘들고 고달픈 일이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지요.

자신의 아들과 함께 키우던 송아지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외양간에 넣으려고 했지만 도대체 이 송아지가 들어가려고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앞에서 끌고 그의 아들은 뒤에서 힘차게 밀었습니다.

그러나 도통 송아지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그 동네의 할머니의 한 분이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이봐! 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니까 송아지가 움직이지 않는 거야. 송아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그러더니만 이 할머니는 자신의 손가락을 송아지 입에 물리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자 송아지는 그 손가락을 빨면서 이 할머니가 유도하는 대로 천천히 외양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할머니는 시골에서 자란 경험을 바탕으로 그 송아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즉, 그 송아지는 바로 그 순간에 어미 소의 젖을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사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움직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반성하게 됩니다.

송아지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뜻대로 송아지가 움직여주길 바라는 사람의 모습이었는지, 아니면 송아지의 입장에서 서서 송아지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는 할머니의 모습이었는지…….

사실 내 뜻에 상대방이 맞추길 원하지, 내가 상대방에게 맞추려고 했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내가 상대방에게 맞추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그 쉬운 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어려운 방법인 상대방이 나에게 맞추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기심과 욕심으로 ‘나’에게만 초점이 맞춰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당신 자신에 초점을 맞추셨다면 굳이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할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에게 초점을 맞추셨고, 우리들의 입장에서 우리들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셨기에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온갖 거짓과 불의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인 진리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시려는 그분의 사랑을 다시금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 현재를 살면서 주님께서는 우리 역시 그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십니다.

이제는 ‘나’만을 바라보지 말고, ‘남’ 좀 바라보라고 하시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하십니다.

그 모습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이며,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는 것입니다.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 원하는 소원 한 가지를 꼭 들어 줍시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좋은 글’ 중에서)

 

연을 날리기 위해 아이에게 연줄을 잡히고는 연을 들고 언덕 위로 뛰어가는 어느 아버지의 높이 쳐든 오른팔과 길게 날리는 연꼬리는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한 남자가 손을 흔들자 그를 알아보고 얼른 자전거 뒷자리에 앉으면서 남자의 허리를 감싸 안는 어느 아가씨가 신고 있는 운동화의 유난히 하얀색은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빨간 우체통에 편지를 넣기 위해 길게 팔을 뻗은 뒤 잘 들어갔는지 궁금하여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어느 주부의 풍성한 뒷모습은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차를 골목 어귀에 세운 뒤 손님의 잠든 아이를 안고, 아이를 업은 손님을 집까지 바래다 주는 어느 택시기사의 노란 유니폼은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조촐한 결혼식 날 반주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 축가를 부르는 신랑신부 친구들의 밝고 힘찬 목소리는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속상한 일이 있어 우울해 하던 그녀가 같이 있는 친구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마음을 추스르고 밝게 웃는 모습은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값싼 옷인 줄 알면서도 친구의 새 옷을 만지며 “옷감이 부드럽다, 색깔이 곱다, 따뜻하겠다.”하고 부러운 듯 말하는 친구의 예쁜 말은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등에 업고 있는 아이가 추울까 봐 손을 뒤로 접히고 포대기 위쪽 끝을 아슬아슬하게 잡아 올리는 어머니의 애타는 손길은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곧 떠나는 기차의 창밖에 서서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안에 앉아 계신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말하고 손짓하는 아들의 유난히 큰 키는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