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도 말씀하시듯이,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을 일찌감치 포기했지요.
예수님을 먹보요 술주정뱅이요 죄인들과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함으로써, 자신들을 구원할 구세주가 아니라 율법을 어기거나 무시하는 사람이라고 판단을 해버립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느님의 아드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는 엄청난 죄악으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포기한 것은 어쩌면 예수님 자체가 아니라, 이 세상을 살게 하는 커다란 힘인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의 완성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자유를 얽매고 구속하는 율법이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율법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사랑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음을 밝히십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은 단순히 계명 자체에 의미를 두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포기했고 이것은 곧 사랑의 실천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도 이 사랑의 실천을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요?
‘저 사람만은 안 된다.’고 사랑의 대상에 있어서 예외를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 세상 것들 중에서는 포기하면 오히려 이득이 될 때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만큼은 포기하면 분명히 땅을 치고 후회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람은 절대로 포기하지 맙시다.
상처 주지 않고 사랑하기 (이철환, ‘연탄길’ 중에서)
음식점 출입문이 열리더니 여자 아이가 동생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영철이 주문을 받기 위해 아이들 쪽으로 갔을 때 큰 아이가 말했다. “자장면 두 개 주세요.” “언니는 왜 안 먹어?” “응, 점심 먹은 게 체했나 봐.” “언니… 우리도 엄마 아빠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렇게 같이 저녁도 먹구.”
그때 영선이 주방에서 급히 나왔다. “너 혹시 인혜 아니니?” “네, 그런데 누구세요?” “엄마 친구 영선이 아줌마야. 한 동네에 살았었는데, 네가 어릴 때라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구나.” 영선은 아이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인정이도 많이 컸구나.” 그제야 아이들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영선은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가 자장면 세 그릇과 탕수육 한 접시를 내왔다. “안녕히 계세요.” “그래, 잘 가라. 차 조심하고… 자장면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 알았지?” “네…” 어두운 길을 총총히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처마 끝에 매달려 제 키를 키워 가는 고드름처럼 힘겨워 보였다.
영철이 물었다. “누구네 애들이지?” “사실은, 모르는 애들이에요. 무턱대고 음식을 그냥 주면 아이들이 상처 받을지도 모르잖아요. 엄마 친구라고 하면 아이들이 또 올 수도 있고 해서…” “그런데 아이들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아이들이 말하는 걸 들었어요. 자기는 먹고 싶어도 참으면서 동생들만 시켜 주는 모습이 어찌나 안돼 보이던지…” 영선의 눈에 맺힌 눈물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