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말씀 , 알림목록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늘 불평불만이 가득한 석공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부유한 상인의 집 앞을 지나다가 우연히 그 집안을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한눈에도 대단히 화려했습니다.

‘나도 저렇게 살아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무슨 조화인지 석공은 갑자기 그 부유한 상인이 된 것입니다.

소원대로 실컷 돈을 쓰며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안 돼 높은 자리에 있는 장군이 병사의 호위를 받으며 길을 지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장군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다시 ‘나도 저렇게 살아 봤으면!’ 싶었습니다.

이번에도 순식간에 그는 장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호위병들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답답한 것이에요.

그래서 세상을 자유롭게 다니는 바람을 동경하기 시작했습니다.

곧 바람이 된 그는 이번에는 아무리 힘을 써도 끄떡없는 커다란 산에 있는 바위에 감탄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바위가 되었어요.

‘바위보다 더 강한 게 뭐지?’ 이렇게 생각하며 산 아래를 쳐다 보는데, 한 석공이 바위를 열심히 쪼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석공을 돌아오게 되었고, 그는 이렇게 다시 석공이 된 것에 너무나도 감사하면서 살게 되었다고 하네요.

결국 자신의 자리가 가장 좋은 자리, 가장 행복한 자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남의 자리가 가장 좋은 자리, 행복한 자리라고 생각하고 또한 그러한 착각 속에서 힘들게 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주님께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이렇게 살겠습니다. 따라서 저의 이 부탁을 꼭 들어주셔야 합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시지요.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땡깡 부리듯이 주님께 청하더라도, 그 부탁이 나에게 이롭지 않을 경우에는 그 부탁을 들어주시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어때요?

그 결과가 나에게 나쁠 지라도, 지금 이 순간에 내가 바라는 것이 곧바로 다가오기를 주님께 협박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렇게 철부지 같은 우리들의 모습을 너무나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지금 나의 자리에서 한 번 생각해보세요.

그 자리를 얼마나 감사하면서 살고 있었는지요?

혹시 주님의 뜻은 전혀 생각하지 않으면서, ‘예.’ 할 것은 ‘아니요.’라고, 또한 ‘아니요.’라고 할 것을 ‘예.’라고 말하는 잘못된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우리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주님이라는 굳은 믿음만 있다면 굳이 맹세 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그런 믿음을 간직하길 기도합니다.

 

지금 내가 행복한 이유를 찾아봅시다. 한 50가지만 찾아볼까요? 너무 적나요?

 


작은 것도 사랑입니다 (‘좋은글’ 중에서)

 

사랑하는 이에게 해줄 수 있는

어떤 것도 사랑입니다.

작은 것에서 감동을 주고

조금 더 커진

사랑의 부피에 행복해 합니다.

 

햇살이 눈부신 이른 아침

하얀 운동복 차림으로

산책로를 정겹게 걷는

부부를 바라본 적 있습니까?

석양이 아름다운 등산로에서

곱게 세월을 보낸

노부부의 여유로운 여정,

그 어루만짐을 본 적 있습니까?

 

크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작고 적어도 정성이 담긴

진정 마음으로 서로를 향하는 것

사랑은 마음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옅은 구름 지나간 무채색 하늘

이슬 머금은 환한 미소를 지닌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작은 고백은 큰 사랑을 얻습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해줄 수 있는

작은 것도 큰 사랑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