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로 보는 교리] 북한 천주교회의 과거와 오늘
과거 1944년 교세 통계 자료를 보면 전국의 8개 교구 중에서 북한에는 3개의 교구(평양교구, 함흥교구, 덕원교구)에 약 5만 명의 신자가 있었습니다.
그중 당시 평양교구에는 본당 19개, 공소 106개, 교육기관 22개, 복지기관 17개가 자리하고 있었으며 신자 수는 2만 6,400명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1945년 광복 무렵에는 3명의 주교와 80명의 성직자 그리고 180명의 수도자가 북한 지역에서 활동했을 만큼 북한교회는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하지만 1948년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교회가 운영하던 시설이 몰수되고, 1949년 평양 교구장 홍용호 주교의 납치를 시작으로 해서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가 체포되거나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특히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북한에는 단 한 명의 사제도 남아 있을 수 없게 되었고, 교회의 재산은 모두 국가에 귀속되는 등 북한 천주교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특히 성직자와 수도자들에 대한 체포와 납치는 바로 교회의 붕괴로 이어졌고, 신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자신의 신앙을 숨기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40년 넘게 끊어져 있던 신앙의 맥은 1980년대 들어서면서 종교를 활용하고자 하는 북한당국의 정책적 고려로 인해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1988년 6월 ‘조선천주교인협회’가 결성되었고(1999년 1월 조선 카톨릭교 협회로 명칭 변경) 10월 평양에 장충성당을 건립하였습니다. 이후 한국교회와의 교류도 이어가면서 주교단의 사목 방문이 성사되기도 하였습니다.
현재 북한의 천주교 성당은 평양시 선교구역에 건립된 장충성당이 유일합니다.
로마 교황청에서 파견된 신부가 없기 때문에 신자 대표 2명이 돌아가며 매주 일요일 3차례 공소예절을 거행하고 있습니다.(평소 70-80명, 큰 축일 때에는 200명 참석, 북한 신자들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평양 내 신자는 총 800명) 반면 현재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북한의 천주교 신자 숫자는 해방 전 세례를 받은 사람과 1990년대 들어 생겨난 새로운 신자를 포함해서 약 1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현재 남북 천주교회는 1990년 후반부터 인도적인 교류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도적인 지원이 북한 복음화를 위한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북한교회와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는 북한 천주교회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습니다. 때로는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하면서 방치했었습니다.
지난날 무관심했던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며 마음을 열고 대화와 협력을 이어가야겠습니다.
북녘땅에 있는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인 그들을 위해서 우리의 기도와 나눔을 더할 수 있을 때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꽃 피어날 것입니다.
사목국 기획연구팀
사랑으로 하나 되신 주님처럼 저희가 서로 사랑하여 하나 되게 하소서.
평화를 바라시는 주님, 이 나라 이 땅에 잃어버린 평화를 되찾게 하소서.
분단의 깊은 상처를 낫게 하시고 서로 용서하는 화해의 은총을 내려주소서.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평화 통일을 이룩하게 하소서.
–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