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말씀 , 알림목록

연중 제12주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따스한 글 (5-3=2)와 (2+2=4)  ‘좋은 글’ 중에서

(5-3=2)란 어떤 오해(5)라도 세 번(3)을 생각하면 이해(2)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고 (2+2=4)란 이해(2)와 이해(2)가 모일 때 사랑(4)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을 오해할 때가 있고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오해는 대개 잘못된 선입견 편견 이해의 부족에서 생기고 결국 오해는 잘못된 결과를 가져옵니다.

(5-3=2)라는 아무리 큰 오해라도 세 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는 풀이가 새삼 귀하게 여겨집니다.

사실 영어로 “이해”를 말하는 “understand”는 “밑에 서다”라는 뜻으로 그 사람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 이해라는 것입니다.

이해와 이해가 모여 사랑이 된다는 말 너무 귀하지 않습니까?

단순하게 말하자면 사랑은 이해인지도 모릅니다.

따뜻한 이해와 이해가 모일 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낚시 바늘의 되 꼬부라진 부분을 “미늘”이라고 부릅니다.

한번 걸린 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은 “미늘” 때문이죠.

가까운 타인으로 살아가지만 마음 한구석에 미늘을 감추고 살아가는 우리는 때때로 너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벽 앞에 모두가 타인이 되곤 합니다.

(5-3=2)와 (2+2=4)란 단순한 셈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서로와 서로를 가로막고 때로는 멀리 떨어뜨려 놓는 온갖 오해를 따뜻한 이해로 풀어버리고 우리 모두 “사랑”에 이르렀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간에 오해라는 것이 참 어줍잖게 하찮은 일로 오해가 생깁니다.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상대방이 오해를 할 경우가 있고 또 무조건 선입견의 감정으로 오해를 만들기도 합니다.

“오해”라는 엉킨 실타래가 생겼다면 “이해”와 “사랑”으로 서로 풀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전적으로 주님께 맡기는 모습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해와 사랑으로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