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말씀 , 알림목록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어린아이가 공원에서 비둘기에게 빵을 뜯어서 던져주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세계평화만 생각하는 아저씨 하나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지요.

“얘야, 지금 아프리카 같은 나라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란다. 그런데 너는 사람들도 못 먹는 빵을 새에게 던져주고 있구나.”

그러니까 이 어린아이가 그 아저씨보다 몇 배나 더 진지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해요.

“아저씨, 저는 그렇게 먼 데까지는 빵 못 던지는데요?”

어린아이와 아저씨의 생각 차이를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 차이는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이 등장합니까?

문제는 내 생각은 맞고 남의 생각은 틀리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이는 하느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이러한 기도를 하느님께 하시지 않습니까?

‘하느님, 내일 오랜만에 우리 가족들이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물론 지금 가물어서 비가 좀 와야 하겠지만, 저희가 놀러가는 그 지방만큼은 맑은 날씨를 허락해 주세요.’

이러한 기도를 들으시는 하느님께서는 입장이 좀 난처하실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지방에 사는 사람 중에서 비를 원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놀러가는 그 지방에 비가 오면 이렇게 기도하지요.

‘하느님, 제 기도를 이번에도 씹으셨군요. 그토록 제가 미우십니까?’

이러한 말에 하느님께서는 더욱 더 입장이 난처하시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를 똑같이 사랑하시기 때문이지요.

그러면서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까짓 부탁 하나도 못 들어주시는 것을 보니 당신도 그다지 대단하신 존재는 아닌 것 같네요.’

이러면서 하느님과 멀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똑같이 사랑하시기에 가장 좋은 길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하느님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이에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말한다고 전하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예수님께서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십니다.

제자들의 생각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같은 지를 물으시는 것이지요.

그러나 베드로가 나서서 말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답이 예수님께서 원하신 답이었습니다.

즉, 예수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 결과 베드로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는 예수님과 같은 생각,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생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생각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해 나갈 때, 우리 역시 베드로처럼 커다란 영광을 얻게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지 마세요.

 


 

행복을 열어가는 사람들 (‘좋은 글’ 중에서)

 

평소에 관심 없던 사람도

어느 날

부드러운 눈길 따뜻한 미소로

살며시 건네주는 사탕 몇 알에

가슴 따뜻해 옴을 느낍니다.

 

한번 만난 적 없는 사람일지라도

서로 밝은 미소로 인사하면

가슴속에 따뜻한 느낌 전해옵니다.

 

자주 만난 적 없는 사람이

밝은 미소로 격려를 전해줄 때

가슴속에 따뜻한 마음이 전해집니다.

 

짧은 순간

짧은 한마디에서도

서로에게 전해지는 따뜻한 느낌으로

살아있음이 행복임을

가슴으로 느껴봅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밝은 미소 따뜻한 한마디로

행복을 전해줄 수 있다면

나도 또한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내게 행복을 전해 준

그분들에게 감사하며

나도 행복을 전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당신은 행복을 열어가는 글을 읽으므로

나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행복을 열어가는 사람이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