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로 보는 교리] 서울주보에 보신탕 이야기가?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 전, 독일에서 체험한 일입니다.
오전 수업을 받기 위해 교실에 들어갔는데, 한 외국인 학생이 한국 학생을 몰아붙이고 있었습니다. “너희 한국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는다며? 문명인이 개를 먹을 수 있냐?” 한국 학생은 큰 소리에 눌려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제 안에 숨어있던 오지라퍼가 발동했습니다. “그건 네가 무식해서 모르고 하는 소리야. 너희가 알고 있는 애완견이 아니다.”, “무슨 헛소리야?”
말싸움이 계속되자 한국 학생들과 아시아계 학생들이 거들었습니다. 외국인 학생이 코너에 몰리자 다른 유럽 학생들도 가세해 대륙 간 전쟁(?)이 일어났고, 말싸움이 한창일 때 선생님이 들어왔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으신 선생님은 아예 수업 시간에 이 문제를 가지고 토론을 시켰습니다.
오랫동안 양측이 입에 침 튀기며 토론을 했지만, 결론은 나오지 않았죠.
다른 나라의 식습관 문화는 고유한 것이기에 다른 이들의 잣대로 함부로 예단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일본의 곤충 초밥, 개구리 회, 참치 눈알,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먹는 원숭이 뇌 요리 등은 먹는 건 고사하고 쳐다도 못 볼 것입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한국의 개고기 문화에 항의하여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는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한국인이 보신탕을 먹지 못하게 해달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세계동물보호협회는 개고기 문화가 근절되지 않으면 올림픽을 보이콧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었지요. 한국 정부는 보신탕집을 안 보이는 변두리나 골목으로 밀어내고 ‘보신탕’이란 간판도 ‘영양탕’이나 ‘사철탕’ 등으로 둔갑시켰습니다. 문제는 보신탕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올림픽을 준비하며 환경정비라는 명목으로 수십만 주민이 길거리로 쫓겨났고, 전국의 판잣집을 무단 철거해버렸습니다. 부랑자, 거지, 지적장애인들은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보이면 잡혀가 수용소에 수용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너무 체면이나 겉모습을 중요시하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었죠. 음식 문화는 세계마다 다르고 그리고 계속 변화합니다. 음식 문화가 다르다고 그 누구도 비난할 권리는 없습니다.
요즘에는 애완견을 기르는 인구가 1,000만 이상 될 정도로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애완견을 가족과 다름없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보신탕은 한국인들의 고급 먹거리였습니다. 1978년 5월 28일 자 서울주보에는 ‘보신탕’이란 제목의 글이 게재되었을 정도입니다. 주보에는 보신탕이 건강에 좋다는 온갖 예찬론과 함께 성체 성혈 대축일의 말씀과 기묘하게 연결하여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2020년 지금 이 글을 주보에 올렸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파장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그만큼 시대와 문화가 변했다는 것이겠죠. 이처럼 서울주보는 시대의 변화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바르게 기억함은 바로 현재의 삶을 반성하고 미래를 향한 방향을 잡아준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허영엽 마티아 신부 |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