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로 배우는 교리] 5년간 내 삶이었던 ‘타인의 삶’
|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다리, 감정이입과 공감 신경망처럼 촘촘히 연결된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우리는 고독감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사회적 소외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치 이데올로기와 이익 집단의 편향성과 적대성에 우리 자신의 자아를 맡기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의의 대립과 타협이 실종된 문화 속에서 그러한 시도는 타인을 향한 공감 능력을 상실하게 하여, 자아의 성숙을 후퇴시킬뿐입니다.
영화 <타인의 삶>은 1980년대 분단 독일에서 버거운 삶을 살던 한 개인이 어떻게 타인을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자아를 해방시키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동독의 국가보안부 ‘슈타지’의 비즐러 대위는 취조실에서 반체제 인사들을 고문하면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냉혈 인물입니다. 확고한 정치적 신념으로 가득 찬 그는 반체제 인사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제거하려 합니다. 그런 그에게 반체제 극작가 드라이만을 감시하라는 임무가 맡겨집니다. 드라이만의 아파트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고 그를 감시하기 시작하면서 비즐러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과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는 그의 삶에 점차 호기심을 갖게 됩니다. 드라이만이 읽던 시집을 가져와 읽으며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드라이만이 자살한 친구를 애도하며 연주하는 피아노곡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그는 드라이만에 점점 더 감정이입을 하게 됩니다. 고위 관리에 의해 유린당하면서 자신을 속이는 애인 크리스타를 오히려 따스하게 품어주는 드라이만의 모습을 엿보면서 비즐러는 인간에 대한 참된 이해와 용서, 공감의 의미도 깨닫게 됩니다.
드라이만에 대해 공감을 갖게 된 비즐러는 그의 반체제 활동 계획을 알고도 눈감아줄 뿐만 아니라 조직 상부에 거짓 보고를 하여 그를 보호하고, 체포의 위기에 빠진 그를 구해내기도 합니다. 결국 상관에게 발각되어 어두운 지하실에서 편지를 검열하는 직책으로 좌천되지만 비즐러는 오히려 행복합니다. 그가 생전 처음으로 경험한 감정이입과 공감의 과정은 그로 하여금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게 했을 뿐 아니라, 메마르고 공허한 정치적 신념으로 꽉 채워진 자신의 자아를 성찰하고 치유할 기회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된 후, 드라이만은 자신이 국가보안부에 의해 감시당하고도 체포되지 않았던 수수께끼를 풀기위해 옛 동독 슈타지 본부의 문서 보관실을 찾습니다. 자신에 대한 보고서를 읽으면서 그는 자신의 행위를 묵인하고 의도적으로 자신을 보호했던 한 비밀 요원, 비즐러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2년 후, 드라이만은 새 소설을 발간하면서 비즐러에게 감사의 헌정사를 바칩니다. 한 번도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지만, 이번에는 드라이만이 그 2년동안의 침묵 속에서 비즐러에 대한 감정이입과 공감의 과정을 통해 비즐러의 삶과 자신의 삶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했던 것입니다.
이광모 프란치스코 | 영화사 백두대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