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수정 추기경 2020 [성탄 메시지]
‘주님 성탄 대축일’ (12월 25일) 성탄 메시지
염수정 추기경은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기에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은총과 평화를 청하게 된다”며 “곤경 속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성탄이 희망과 위로의 빛으로 다가오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염 추기경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언급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환자들이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바라며 많은 수고와 희생을 아끼지 않는 의료진과 봉사자들에게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생활고에 시달려 고통의 나락으로 내몰리는 많은 서민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참 아프다”며 “소외받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형제적 사랑을 가져야 할 때”라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염 추기경은 “예수님은 비천한 종의 모습이지만, 사랑과 자비를 가득히 안고 세상에 오셨다”며 “우리 모두 주님을 마음 안에 모시고, 이웃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면서 사랑의 손길을 내밀면 세상에 가득 찬 고통이 줄어들고 그 자리에는 기쁨과 평화가 들어서기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2020년 성탄메세지 전문 (全文).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마태 1,23)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성탄을 축하합니다! 참 빛으로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가정에 가득하기를 빕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기에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은총과 평화를 청하게 됩니다. 곤경 속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성탄이 희망과 위로의 빛으로 다가오기를 기원합니다. 북녘 신자들도 신앙의 자유를 얻어 함께 주님을 찬양하게 될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 매우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환자들이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바라며 많은 수고와 희생을 아끼지 않는 의료진과 봉사자들에게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생활고에 시달려 고통의 나락으로 내몰리는 많은 서민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참 아픕니다. 소외받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형제적 사랑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도 많이 힘들고 혼란스러워서 앞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변이 어두워질수록 위로부터 오는 빛에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신앙인은 어려울 때일수록 하느님께 의탁하며 그분께 희망을 두어야 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도 고난을 겪을 때마다 하느님께 눈을 돌렸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과거에 베푸신 구원 업적을 기억하면서, 이제 그분께서 빨리 ‘하늘을 찢고 내려오셔서’(이사 63,19) 자신들을 비참한 상태에서 구해주시기를 간절히 청하였습니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간절한 청원에 응답하시어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주님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기대하던 것처럼 권세가 당당한 지배자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셨습니다.”(필립 2,7) 이런 점은 예수님이 작은 마을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던 사실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요셉은 황제가 명한 호적등록을 위해 만삭의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고향 베들레헴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서 방을 구할 수가 없게 되자 마리아는 마구간에서 아들을 낳아 구유에 눕힙니다(루카 2,1-7).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 세상의 구원자이신 분이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셔서 초라하고 누추한 곳에 몸을 누이신 것입니다.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 자신을 낮추어 초라한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것은 낮은 곳에서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이들에게 희망과 구원의 빛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구세주 예수님은 낮은 곳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그분을 만나려면 일어나 걸어가야 합니다. 동방박사가 ‘별빛의 인도를 받아’ 자신의 고향을 뒤로하고 길을 떠났듯이(마태 2,1-12), 베들레헴의 목자들이 ‘천사의 지시를 따라서’ 자신의 일터를 떠나 마구간을 찾아갔듯이(루카 2,8-18), 우리도 일어나 그분께로 향해 가야 합니다. 자신의 자리에 머물고자 하면 그분을 만날 수 없습니다. 내 소유, 내 신념, 내 지식, 내 경험, 내 편을 고집하면, 구세주를 만날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이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서 이웃과 하느님께로 향해 걸어가야만 참 빛(요한 1,9)이신 구세주를 만날 수 있습니다. 참된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동방박사들이 누렸던 큰 기쁨과 천사들이 목동들에게 선포하였던 평화를 맛볼 수 있습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처럼 되어서 자기 기준대로 선과 악을 판단하려는 욕심’(창세 3,5) 때문에 죄를 지었습니다. 아담의 후손인 우리에게도 자신이 모든 것을 판단하고자 하는 욕심, 세상의 중심인 절대자가 되어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조정하고 싶은 욕망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도한 욕심과 욕망으로 인해서 세상은 점점 더 어지럽고 힘들어집니다. 성경이 경고하듯이 그릇된 욕망의 종착점은 결국 죽음뿐입니다.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야고 1,15) 하느님은 잘못된 욕망에 빠져 죄와 죽음의 굴레에 갇혀있는 인간을 구하시려고 당신 아들을 비천한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낮추시고 끝까지 하느님께 순종하심으로써 우리를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구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비천한 종의 모습이지만, 사랑과 자비를 가득히 안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을 만나면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갈 힘과 희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분 곁에 머무르면 자신이 받은 힘과 희망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마음 안에 모시고, 이웃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면서, 사랑의 손길을 내밀도록 합시다. 그러면 세상에 가득 찬 고통이 줄어들고 그 자리에는 기쁨과 평화가 들어서기 시작할 것입니다.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의 은총에 의탁하고, 그분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청하면서 우리 모두 하느님을 향한 길을 꿋꿋하게 걷도록 합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평양교구장 서리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