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김대건신부님 기지와 용덕
성장통을 극복한 이후 김대건 신부님에게서 발견되는 성덕을 뽑아보라 한다면, 용덕(勇德)과 신덕(信德)을 들 수 있겠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편지를 읽노라면, 용덕을 갖춘 그분의 타고난 성격을 만나게 됩니다. “훈춘 기행문”이라고 불리는 김대건 신부님의 서한에 나오는 내용을 소개합니다. 성인은 장춘에서 훈춘으로 가던 중 한 객줏집에서 음력설을 맞이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설 첫날은 자정까지 깨어서 새해의 귀신을 맞이해야 한 해의 운이 좋다는 미신에 빠져있었습니다. 성인은 여행에 지쳐 온돌방에서 자려고 했는데, 주인이 다가옵니다.
“일어나시오. 귀신들이 가까이 옵니다. 귀신을 마중 나가야 합니다.” 성인께서는 무슨 귀신이냐고 되물으면서 다음과 같이 기지를 발휘합니다. “여보, 잠깐 기다려요. 보다시피 나는 지금 잠 귀신에 접해 있소. 지금 오는 귀신중에 나를 이만큼 기분 좋게 해줄 귀신이 또 있소? 제발 내 귀신과 조용히 즐기게 내버려 둬요. 당신이 말하는 그런 귀신들을 나는 모르오.” 그러자 주인은 홀로 중얼거리며, 아마도 앞으로 여행길이 불길할 거라 하면서 떠나갔습니다. 이처럼 당시 김대건 신학생은 기지와 순발력으로 자연스레 미신도 떨쳐버리고, 여행을 위한 휴식도 취할 수 있었습니다.
부제품을 받은 김대건 성인은 육로로 국경을 통과할때, 보초들에게 들킬까 봐 눈길을 맨발로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한양에 도착해서 교우들을 만나 배를 구해서 서해안을 횡단합니다. 출항할 때의 상황을 자신의 편지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음력 3월 24일(양력 1845년 4월 30일) 돛을 펴고 바다로 나아갔습니다. 교우들은 바다를 보고 아주 놀라 어디로 가는 것이냐고 서로 물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어디로 가느냐고 감히 묻지를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하는 일에 누구든 질문하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농부 출신으로 바다를 거의 본 적도 없는 교우들에게 작은 배로 바다를 건너자고 하면 반대할 것이 분명하므로, 말도 없이 바다를 향해 나가면서 질문까지 금지시켰던 것입니다. 이 나룻배는 결국 풍랑에 휩싸여 배가 전복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제는 끝장이다. 살아날 수 없을 거야.’라고들 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하느님 다음으로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신 성모님의 기적의 상본을 보이면서 ‘겁내지 마십시오. 우리를 도우시는 성모님이 여기에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습니까.’하고 말하였습니다.” 간신히 풍랑에서 살아남은 나룻배는 지나가던 산동(山東) 배를 만나 상해까지 끌려갑니다. 선교사들은 한결같이 ‘저런 나무토막을 타고 바다를 건널 생각을 하다니! 조선 교우들은 놀라운 신앙을 가졌다.’고 감탄했습니다. 이처럼 김대건 신부님의 신덕(信德)은 선교사의 입국로를 개척하려는 그의 용덕에서 시작했고, 그 용덕은 신부님이 지니고 있던 낙천적인 기지(機智)와 적극적인 실천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감옥에서 죽음을 앞둔 김대건 신부님은 마지막 라틴어 편지에서 희망을 표현합니다. “주님! 모든 일을 좋은 결과로 이끌어 주소서!”
조한건 프란치스코 신부 | 한국교회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