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말씀 , 알림목록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회사와 집을 오가는 일상의 반복에 지친 형제님이 계셨습니다.

회사 안에서의 업무,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역할 등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었던 그는 점점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의 상담을 받았지요.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 형제님을 데리고 병원을 빠져나와 병원 옆의 자갈길로 갔습니다.

의사는 어리둥절해 하는 남자의 어깨에 큰 광주리 하나를 얹어 주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돌을 한 개씩 주워 담으세요. 그리고 어떤 기분인지 느껴보세요.”

남자는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의사 선생님의 말씀처럼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돌멩이를 광주리 안에 주워 담았습니다.

이윽고 길 끝에 이르자 쌓인 돌의 무게가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지요.

돌덩이라고 가득 찬 광주리를 짊어진 남자는 자갈길 끝에서 기다리고 있던 의사를 보자마자 어깨가 무거워 죽겠다며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그것이 바로 삶을 힘겹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빈 광주리를 지고 오지만 인생을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세상에 있는 돌을 하나씩 주워 담아야 합니다. 광주리에 담긴 돌은 당신이 얻은 재산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어깨를 누르는 책임이 되기도 하지요. 책임이 큰 사람은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어깨의 돌이 무겁다며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돌을 버릴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광주리가 가벼워져서 신이 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길의 끝에 설 때는 어떨까요?

텅 빈 광주리만 어깨에 짊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편한 길.

그러나 인생의 끝에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 어렵고 힘든 길이 인생의 끝에서 커다란 선물이라는 행복으로 다가오게 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십니다.

당신의 능력으로 편하게 모든 것을 이루실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반대의 야유가 아닌 찬성의 환호를 받으면서, 편하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편한 길을 선택하지 않으십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생사권을 쥐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 타협하기 보다는,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을 예수님께서는 직접 보여주셨고, 그 끝에 부활의 영광이 있음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역시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그분 사랑의 삶을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그 과정은 쉽지 않겠지만, 바로 그때 우리 역시 인생의 끝에 영원한 생명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화살처럼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나 그 사랑을 성장시키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사랑도 결혼 후 반세기가 지나기 전까지는 완벽한 사랑이 무엇인지 말할 수가 없다. (마크 트웨인)

 

 

희망 (Azwie)

넬슨 만데라, 그는 D급 죄수였다. 최악의 정치범인 D급 죄수의 면회는 6개월에 한 번, 편지도 한 통밖에 허용되지 않았다. 시계라는 건 있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었으며 갈수록 죄책감만 늘어갔다. 간수는 일부러 그 신문기사를 오려 그가 보도록 했다. 그를 더욱 괴롭히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차라리 자살이라도 하겠지 여기며. 독방에 갇힌 지 4년째 되던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듬해에는 큰아들마저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그는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조차 없었다. 가족 역시 14년째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내와 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집에서 쫓겨나, 고립된 흑인 거주 지역으로 끌려갔다. 둘째 딸은 우울증에 시달렸지만,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냥 내버려 두라는 하소연 뿐이었다.

 

누군가 자신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고 느낄 때 삶은 절망 그 자체다. 이 끔찍한 무력감 앞에서 그는 아직도 더 견뎌야 하는 것인지, 얼마나 더 이대로 견뎌야 하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14년 동안이나 보지 못한 맏딸이 자식을 낳았다고 찾아왔다. 면회가 고통스러울 법했지만, 그는 피하지 않았다.

 

“아버지, 그때 편지로 말씀드린 제 딸의 이름은 정하셨나요?”

 

그들에게는 할아버지가 손자의 이름을 지어주는 풍습이 있었다. 맏딸은 그 무수한 고난의 시간을 견뎌 어른으로 성장했고 결혼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딸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아버지를 찾아왔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쪽지를 내밀었다. 딸은 그 쪽지를 조심스럽게 펼쳐서 보고는 종이에 얼굴을 묻고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겨우 참아냈다. 종이에 묻은 잉크가 눈물로 얼룩지고 있었다. 거기에 적혀 있는 글자는 다음과 같았다.

 

아즈위 (Azwie, 희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