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7주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이 세상은 내 뜻대로 되는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긴 내 앞 길이 항상 평탄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 번 고속도로를 생각해 보세요.
이 고속도로는 막히지 않고 빠른 시간 내에 목적지를 갈 수 있도록 만든 도로입니다.
그래서 신호등이 없지요.
또한 횡단보도도 없어서 일부러 멈출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고속도로라고 해서 막히지 않을까요?
이 고속도로도 꽉 막혀서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내 삶이 무조건 잘 되리라는 것은 어쩌면 지나친 욕심입니다.
고속도로가 막힐 수 있는 것처럼, 내 삶도 갑자기 막힐 수 있습니다.
믿었던 직장에서 해고 당할 수도 있고, 믿었던 사람에게서 버림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믿었던 자녀와 친구가 나를 슬프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뻥 뚫려야 정상인 것 같은 내 삶이 갑자기 막혀 있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막혀 버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려니’ 하면서 포기해야 할까요?
이때 우리들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경우 인간적인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주님의 안목으로 문제를 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은 그 유명한 오병이어 사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필립보에게 말씀하십니다.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필립보는 인간적인 측면에서 생각하고 판단해서 대답합니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인간적인 측면으로 생각하지도 행동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어느 아이가 가지고 온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 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지요.
하느님의 측면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때에만 가능한 기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 분명히 꽉 막힐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포기라는 것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주님의 뜻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과 같은 커다란 기적을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아이가 가져온 아주 작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와 같이 우리에게 아주 작은 정성만 있어도 주님께서는 우리 편이 되어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베푸시는 커다란 기적은 우리의 삶 안에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 기적들을 느껴 가면서 주님의 뜻에 맞게 생활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주님 안에서 참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진실로 부자인지 알고 싶다면 오늘 밤에 가진 돈을 모두 잃는다고 했을 때 내일 무엇이 남게 될 것 인지를 살펴보라 (보에트커).
행복한 사람, 불행한 사람 (‘좋은생각’ 중에서)
행복한 사람은 남을 위해 기도하고, 불행한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기도한다.
남의 칭찬을 자주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자기자랑을 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일을 보람으로 아는 사람은 행복하고, 의무로 아는 사람은 불행하다.
언제나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는 사람은 행복하고, 투덜대는 사람은 불행하다.
평생 고마웠던 일만 마음에 두는 사람은 행복하고, 섭섭했던 일만 마음에 담는 사람은 불행하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부드러운 사람은 행복하고, 자기에게 후하고 남에게 가혹한 사람은 불행하다.
자신의 잘못을 곧바로 인정하는 사람은 행복하고, 잘못했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 사람은 불행하다.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걷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고개를 숙이고 걷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잘 된 이유를 찾는 사람은 행복하고, 안 될 이유만 찾는 사람은 불행하다.
아는 것이 적어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행복하고, 아는 것이 많아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겸손과 양보가 몸에 밴 사람은 행복하고, 교만과 거만이 몸에 밴 사람은 불행하다.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미워하는 사람이 많은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자기의 잘못을 모르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죽음이 삶의 연장이라고 태연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죽음이 끝이라고 무서워하며 불안에 떠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할 일을 다 하고 천명을 기다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시작도 않고 요행을 기다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