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말씀 , 알림목록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자신의 배경에 늘 불만인 청년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번듯한 명예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돈이 많은 것도 아닌 자신의 집이 늘 못마땅했지요.

특히 신문이나 방송을 볼수록 그는 더욱 화가 났습니다.

“누구는 외국 유학도 다녀오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데 난 이게 뭐람. 저런 좋은 운명을 타고난 친구들과 내가 어떻게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어느 날, 그는 대학 선배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 선배는 벤처기업을 열어 대성공을 거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무런 배경도 없는 그 선배가 어떻게 성공을 거두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선배님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나요? 저도 성공할 수 있을까요? 저의 운명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선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습니다.

“자네의 손을 펴보게. 그러면 내가 자네의 운명에 대해서 말해주지.”

청년의 관심이 온통 손에 집중하자, 선배는 이렇게 설명하세요.

“여기를 보게. 생명선은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의 중간 부분에서 출발하여 엄지손가락 아래쪽을 둘러싸고 있는 선을 말하네. 두뇌선은 손바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는 선이지. 운명선은 세로로 아래에서 위로 뻗은 선이네.”

청년의 손금을 보면서 이야기하던 선배는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자네 손을 한 번 보게. 자네의 손에도 그 손금이 모두 있지 않은가? 운명은 바로 자신의 손안에 있는 거라네. 우리가 기억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자였던 사람들은 자신의 손안에 있는 운명을 잘 개척한 사람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손금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손금을 보면서 오래 살고 안 살고 언제 좋은 시간이 오고 안 오고를 이야기하지요.

따라서 이 손금을 통해 그 사람의 운명을 알 수 있다는 것인데, 그 손금이 자신의 손바닥 안에 있는 것이니 만큼 결국은 자기 스스로 얼마나 운명을 잘 개척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머리카락 숫자까지도 다 세어놓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분께서 우리들의 고통과 시련을 나 몰라라 외면하시겠습니까?

즉,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우리 각자에게 좋은 씨를 뿌리시는 사랑 가득하신 분이십니다.

문제는 마음 안에 좋은 씨가 잘 자라지 못하게 하는 가라지를 심는 우리들의 부정적인 마음 때문입니다.

소극적인 가라지, 의심의 가라지, 미움의 가라지, 질투의 가라지, 분노의 가라지, 좌절의 가라지 등등을 우리들은 하나씩 내 마음의 밭에 심어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고 그 결과 자기 자신의 운명을 제대로 만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나를 망치는 가라지를 심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심어진 가라지는 조심스럽게 하나씩 하나씩 뽑아서 불에 태워 없애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청년기가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가장 행복한 인간은 깊은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행복해지는 것이다. (윌리엄 라이언 펠푸스)

 

 

 

가위 바위 보

(박성철, ‘가장 소중한 사람, 나에게 선물하는 책’ 중에서)

 

어느 햇살 따스한 한가한 일요일 오후, 놀이터에서 아빠와 꼬마가 함께 놀고 있었다. 그네에 걸터앉아서 아빠와 아이는 가위 바위 보 놀이를 하고 있었다. 꼬마는 밝은 얼굴로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오른손으로 가위 바위 보 해요. 제가 이기면 아빠가 장난감 사주시고, 아빠가 이기면 제가 안마 해 드릴게요.”

 

“좋아!”

 

꼬마는 신나서 가위 바위 보를 했다.

 

“와! 내가 이겼다. 아빠, 이번엔 피자 내기 가위 바위 보 해요.”

 

이번에도 역시 꼬마가 이겼다. 계속해서 가위 바위 보를 했지만 아빠는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아빠는 아이의 신이 난 표정을 보며 흐뭇한 미소로 말했다.

 

“이제 우리 가위 바위 보 그만하고 장난감도 사고 피자도 먹으러 갈까?”

 

꼬마는 너무도 기뻐하며 아빠를 따라 나섰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한 할아버지가 ‘참 자상한 아버지구나’ 생각하고 다가가 말을 건넸다.

 

“참으로 보기 좋구려. 아들이랑 다정하게 가위 바위 보를 하는 당신의 모습이 말이오.”

 

할아버지의 말에 아빠는 담담하게 말했다.

 

“가위 바위 보는 우리 애가 너무도 좋아하는 놀이예요. 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이길 수가 없답니다. 우리 애가 무엇을 낼 것인가를 이미 다 알고 있거든요. 녀석은 일 년 전 사고로 손가락을 모두 잃었지요. 녀석이 철이 드는 언젠가는…… 가위 바위 보 놀이를 하지 않으려고 할 거예요. 그런 날이 안 왔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그때가 되면 제 가슴이 많이 아플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