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말씀 , 알림목록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대한 고향 사람들의 편견을 볼 수 있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던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있어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가 아니라, 단지 같은 동네 살았던 목수의 아들일 뿐입니다.

이러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고향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기적마저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으로 폄하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제까지 우리들이 가지고 있었던 각종 편견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편견은 지금의 내 행동을 항상 최선의 방법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 편견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 최악의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할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셨고, 그 기준으로 당신의 제자들을 뽑으셨습니다.

만약 세상의 편견을 가지고 제자들을 뽑으셨다면 그렇게 형편없는 사람들이 당신의 제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내가 만나는 나의 이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잠시 내려놓고 주님의 눈인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편견이 사라지는 곳에 주님의 기적도 있습니다.

 

편견을 버리세요.

 

산을 넘으면 길이 있다.

(딩푸, ‘내 삶에 따뜻한 위안이 되는 책’중에서)

어느 날, 시무룩해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물었다. “무슨 일 있니?”

 

아들은 잠시 망설이더니 힘없이 대답했다. “지난번보다 성적이 많이 떨어졌어요.”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않겠니? 이러고 있지 말고 나와 함께 산에 가자.”

 

아들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어 따라 나섰다.

 

집을 나서며 아들이 물었다. “아버지, 만약 산 중턱에서 갑자기 비를 만나면 어떡하죠?”

 

“걱정할 것 없다. 그럴 때는 산 정상으로 뛰어가면 돼.”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아버지의 대답에 아들이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하지 않나요? 산 정상은 비바람이 훨씬 더 세잖아요.”

 

“그래, 물론 산 정상에는 비바람이 더 세지. 하지만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란다. 반대로 산 아래는 비바람이 약해서 안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비 때문에 산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고 홍수를 만나 익사 할 수도 있지. 비바람을 만났다고 피하려고만 하면 거센 흐름에 말려들 수 있지만, 오히려 그것에 맞서면 살아남을 수 있는 거란다. 삶도 마찬가지야. 역경에 맞서 싸운 경험이 없다면 참된 인생이라고 할 수 없어. 패자는 지름길을 찾으려 하지만 승자는 목표를 이룰 때까지 끊임없이 도전한단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서 조금은 용기를 얻었다. 하지만 산 중턱 쯤 올라가서 그만 길을 잃어 버리자 아들이 울먹이며 말했다.

 

“출구를 찾지 못하는 제 자신이 미워요. 세상에 성공만 있고 실패는 없으면 좋겠어요.”

 

“세상에 어떻게 성공만 있을 수 있겠니? 실패 없는 성공은 가치가 없단다. 아니 아예 존재하지 않지. 자, 고개를 들어 보렴. 너는 지금까지 줄곧 고개를 숙이고 걸어왔지?”

 

아들이 천천히 고개를 들자 아버지가 물었다. “뭐가 보이니?”

 

“산 너머에 또 산이 있어요. 아! 그리고 하늘도요.”

 

“그래, 그럼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보이겠구나. 앞으로도 어려움을 만나고 실패를 겪을 때 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렴.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것을 향해 걸어가는 거야. 거센 풍랑뒤에 고요한 바다가 있고, 험난한 길 뒤에 평탄한 대로가 있다는 것을 믿으렴. 그러면 어떤 힘든 일이 닥쳐도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단다. 작은 실패나 잘못으로 주저앉고 싶은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란다.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