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결국 내가 주축이 되어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의 삶은 기쁨과 열정이 함께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기쁨과 열정이 넘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도, 스스로의 삶을 왜 소극적이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힘들게 살고 있는지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은 나를 주인공으로써 세워 주신 삶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보다는 조연이 내 역할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연극 주인공을 맡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외워야 할 대사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결국 외우지 못해서 주인공에서 대사 한 마디 없는 지나가는 행인 3의 역할로 변경이 되었습니다.
기뻤습니다.
그러나 연극이 끝난 뒤에 괜히 역할을 바꿨다고 후회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사람은 지나가는 행인 3이 아니라, 힘들게 대사를 외우고 어렵게 감정을 표현해야 했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내 삶의 주인공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입니다.
그리고 이 주인공인 내가 사람들의 박수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주인공의 역할을 피하면서 조연만을 하려고 할까요?
바로 그 과정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힘들다고 피하기만 한다면, 그래서 조연만을 선택한다면 박수받을 일이 전혀 없게 됩니다.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우리 주님께서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힘내라고 그리고 주인공으로 힘차게 살아가라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몸을 떼어서 나누어 주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이 주님의 몸을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영하고 있습니다.
이 몸은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는, 그래서 참된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거룩한 몸으로써 우리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줍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자신 없어 하면서 조연으로만 만족하려고 하십니까?
자기 자신은 이제 나이가 많다고 그래서 포기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다.’
바로 지금의 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나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젊은 내가 지금 당장 주인공의 모습으로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안 하느니 늦더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격언을 기억하면서 지금 믿고, 지금 희망을 갖고, 지금 사랑을 하는 주인공의 길을 걸어가는 주님의 제자가 되길 바랍니다.
들쑥날쑥한 돌멩이가 있기 때문에 시냇물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듯이 들쑥날쑥한 일상의 일들이 있을 때 인생도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여운학, ‘희망 다운로드’ 중에서)
수의 비극
(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중에서)
수를 세는 버릇 때문에 때때로 엉뚱한 싸움이 벌어진다. ‘많다’ ‘적다’ 이러한 말들이 숫자로 표현되는 순간 우리는 작은 차이에 집착하게 되는 까닭이다. 말하자면 우리 형제에게 주시는 어머니의 과자 분배가 어렵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작은 별사탕들을 한 움큼씩 집어 주셨다. 그러면 형과 나는 분배받은 별사탕을 방바닥에 늘어놓고 자기 몫을 세었다. 내 몫이 형보다 적으면 어머니가 나를 그만큼 덜 사랑하신다고 생각했다. 셈이 끝나면 싸움이 벌어진다. “형은 몇 개?” “서른 넷.” “난 서른하나. 형이 세 개 많으니까 두 개만 내놔.” 이러다 주먹이 오간다.
어머니는 그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으셨던가 보다. 그 뒤 별사탕을 똑같은 수로 나눠 주셨다. 그러나 이번에는 누가 붉은색 별사탕을 더 많이 가졌느냐로 시비가 붙었다. 형제는 또 멱살을 잡다 결국 어머니에게 매를 맞았다. 그러나 누군가 말리는 틈을 타서 도망쳤다.
인적이 끊긴 밤길. 무서웠다. “개구리가 운다. 그치?” 형이 속삭였다. 하지만 울음 소리를 세지 않았다. 어떻게 들으면 한 놈이 우는 것 같고, 또 어떻게 들으면 수만 마리가 우는 것 같은 소리. 사실 그것을 누가 셀 수 있겠는가.
그날 밤, 형과 나는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서로 용서했다. 나는 그때 숫자의 비극 같은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다시는 숫자를 세지 않으리라.’ 서로 움켜잡은 두 손에서 내 손과 형 손을 식별하기조차 어려운 밤. 따스한 것만이, 어렴풋한 것만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