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강론] 연중16주일. 조부모와 노인의 날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는 날벌레들의 생태를 주의 깊게 관찰하던 중 거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날벌레들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무턱대고 자신의 앞에 있는 벌레만을 따라서 빙빙 난다는 것이었지요.

즉, 앞에 있는 다른 벌레가 돌면 따라서 돕니다.

어떤 방향이나 목적지도 없이 무조건 그냥 도는 것입니다.

심지어 바로 밑에다 먹을 것을 가져다 놓아도 거들떠보지 않고 계속 돌기만 한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무턱대고 일주일 동안이나 계속 돌던 날벌레들은 결국 굶어 죽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어 보이지요?

그런데 우리들도 때로는 아무런 목적 없이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될 대로 되라’고 말하는 경우도 자주 있으며,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에 눈이 멀어 가장 중요한 주님의 말씀을 철저히 외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아무런 목표 없이 파브르가 관찰한 날벌레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전체 인류의 87%에 이른다고 하네요.

이 글을 보면서 내 자신은 혹시 이 87%에 속해서 나의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서점에만 가 봐도 얼마나 많은 성공철학 책들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공한다는 사람은 기회가 많았고 능력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궁극적인 성공은 바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지요.

이 성공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계십니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사랑을 철저히 실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나의 목표를 바라보기 보다는 남들과 비교하면서 살아갈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남들도 다 그런데 뭐.’, ‘그래도 내가 저 사람보다는 열심히 신앙 생활하잖아.’, ‘사랑이신 주님께서 이 정도는 그냥 봐주실 거야.’, ‘그렇게 살아가면 이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 등등…

많은 이들이 품고 있는 생각들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앞서 목적 없이 앞의 날벌레만을 무조건 쫓는 벌레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당신 추수 때까지 기다려주십니다.

즉, 영원히 기다리는 분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언제 올지 모르는 그 심판의 날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우리들에게 아무런 기회도 또 능력도 주시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사용하신 겨자씨를 보십시오.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겨자씨. 하지만 나중에 커서는 새들이 깃들일 정도 크고 멋있는 나무로 성장하지요.

이처럼 지금 나의 기준으로는 내 모습이 형편없어 보이지만, 나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앞으로 나아갈 때 형편없는 모습에서 벗어나 훌륭한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목표와 이를 위한 나의 노력을 다시금 생각하는 오늘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사랑은 사랑스럽지 않은 것까지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G.K.체스터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