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수난 성지주일 강론 (2025)
[주님수난 성지주일] 교중미사 강론中 발췌.
1년에 한 번 우리 신앙공동체는 신앙의 가장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수난기를 재현하며 이 시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예수수난의 길을 우리가 함께 걸어가는 걸까요? 우리는 그 수난기 속의 한 인물이 되어 그 역할로 참여해 보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수난기는 한 사람의 역할에 머물지 않고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인생 여정을 하느님과 함께 기승전결, 십자가의 마침까지 담고 있습니다.
전례에 참여 한 모든 이, 몇몇 봉사자가 사도의 역할, 또 대사제와 유대인들의 역할을 하고 궁극적으로 모두가 군중의 역할들을 수난기라는 드라마 속에서 행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수난기의 주인공으로서, 우리 각자를 구성원으로 참여시키시면서 우리에게 과연 무엇을 원하실까요? 곰곰이 이번 수난기를 다시 한 번 되짚어보면서 우리 영혼의 History가 그곳에 담겨 있구나! 라는 묵상을 하게 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궁극적으로 우리는 그분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의 원하심은 우리로 하여금 당신처럼 거룩한 사람 되기를, 당신처럼 하느님의 뜻에 충실하여 완전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有限한 사람’으로서의 한계를 지닌 우리는 마음 한 번 먹어서 그리스도가 될 수 없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도움에 힘입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그 희망을 갖고 그 길을 향해 걷습니다.
오늘의 수난기 속에 세례성사를 받은 우리 영혼의 역사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 영혼은 즉, 우리 각자는 살인범이요 반란범이었던 바라빠를 살리라고. 하물며 이교도의 총독이었던 빌라도가 죄가 없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죄 없는 분, 나자렛 예수그리스도를 죽이라고 외치는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그랬던 우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외치던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인데, 이 십자가의 여정 가운데에서 당사자는 원치 않았지만, 예수그리스도를 옆에서 도왔던 키레네 사람 시몬이 되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가슴 아프고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는 헤아릴 수 없지만, 그 마음 안에 울림으로 인해서 그분의 얼굴을 닦아드리는 베로니카가 되고, 함께 눈물을 나누고 슬픔을 나눴던 여인이 되더니 “당신이야말로 의로운 분입니다.”(루카 23,47)라고 고백하던 이교도 백인대장의 영혼이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 우리의 모습임을 확인하고 바라봅니다.
주님수난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형제여러분, 주님은 우리에게 순식간에 당신처럼 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의 여정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랬던 우리에게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라고 했던, 어찌 보면 우리보다 더 큰 죄를 지었던 죄인, 주님을 향한 그의 소박한(?) 바람을 받아들여 주시는 우리 주님, 자비하신 주님, 사랑 넘치는 주님, 우리의 잘잘못을 모두 당신께서 떠안으신 우리 주님, 당신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그리고 그 사랑을 우리 안에서 이루어 갈 때 주님께서는 당신의 나라 안에서, 성체와 성혈의 하느님 나라 잔치, 성체 성사를 이루시겠다는 그 말씀(약속)을 온전히 이루신다 생각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빌라도요, 유다인들이오, 대사제들이오, 군중들이며, 배신자 유다 이스카리웃입니다. 나아가 당신을 배신한 베드로임에도 주님께서는 당신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우리를 소중히 여기시고, 그래서 당신(聖子)과 함께 생명을 주셨던 그분(聖父)과 함께 우리를 하느님의 나라에서 함께할 동료요, 사랑하는 사람으로 초대하셨습니다.
바로 이 주님을 우리는 오늘부터 시작하는 거룩한 한 주간(성주간) 안에 좀 더 깊이, 우리의 생활 안에서 주님을 닮아가며 함께 살아가는 그러한 여정을 보내게 됩니다. 52주(1년) 속의 한 주간, 여러 가지 세상사가 바쁨에도 불구하고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가장 소중한 한 주간이 되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주님, 우리의 스승인 예수그리스도처럼 될 수 있는 그러한 거룩한 마음으로 이 한 주간을 살아간다면, 오늘 전례를 통해서 함께 나누고자 했던 주님의 수난기는 꽃을 피우게 되리라 믿습니다. ⊕
2025.04.13. 최부식 사도요한 주임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