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말씀

고통에 대하여

9월 성모 신심 미사  (루카 2,27-35)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시메온이라는 사람은 성전에 봉헌하러 오신 아기 예수님께 축복하면서 아기 어머니인 성모님께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지셨다고 하면서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난다고 예언합니다.

어쩌면 앞으로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고통에 대하여 (하워드 커틀러)

2차세계대전 당시 수용소에 포로로 잡혔다가 살아난 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한, 인간은 어떤 고통이든 기꺼이 받아들인다.” 라고 말합니다.

그는 수용소에서 겪었던 어려움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힘든 상황에서 살아남는가를 통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젊거나 기운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삶 가운데서 어떤 목적과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힘을 얻었기 때문에 살아남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한다면 삶의 가장 어려운 순간을 잘 헤쳐 나갈 수가 있습니다.

고통이 종종 아무렇게나 무의미하게 일어나는 듯이 보입니다.

심각하고도 비극적인 상황에서 고통 뒤에 숨겨진 의미를 생각하기란 불가능해 보입니다.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그리 고통스럽지 않을 때 한번쯤 고통의 의미를 미리 한번쯤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혹은 큰 어려움을 겪은 후에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작은 노력이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강한 뿌리를 갖고 있는 나무는 강한 폭풍도 견딜 수 있지만, 폭풍이 저 멀리서 나타나는 순간 나무에게 저절로 강한 뿌리가 생겨나지는 않는 법이듯이 말입니다.

고통은 보통 불쾌감을 주지만 그 고통이 우리 인생을 더욱 강하고 깊이 있게 느끼도록 해 준다고 생각해 본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마틴 루터 킹 2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파괴하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뒤를 따르셨던 성모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간직하면서 고통 속에서도 그것을 지키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도 그런 성모님의 모습을 닮아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 지금의 모습이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