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말씀

부족한 믿음을 주님의 사랑으로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의 인상은 매우 인상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었어요.

코는 넓고, 입술은 두꺼웠습니다.

그리고 눈은 매우 작았습니다.

더군다나 팔다리는 키에 비해서 무척이나 길었지요.

바로 이러한 외적인 외모 때문에 소년은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흉한 모습으로 태어나게끔 한 부모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차츰 이 소년은 문학에 대한 재능을 조금씩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남들보다 뛰어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소년을 변화시키기 시작했지요.

그는 외모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대신 자신의 이 재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 소년은 실제로 어른이 되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누구일까요?

바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누구는 많이 가지고 있고, 또 누구는 적게 가지고 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지요.

그런데 그 차이가 삶에 있어서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적은 사람일수록 지금이라는 현재를 보다 더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은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내쳐서 지금과 같은 고통과 시련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기에 남과는 다른 재능을 주셨다는 것.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쁘게 살 수 있도록 나를 창조하셨다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들은 삶 안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두려움의 크기와 그 수를 줄여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향해 이러한 증언을 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하느님의 어린양 모습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즉, 고통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억울한 모습과 세상에 새 활력을 일으킬 하느님 종의 모습이지요.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아드님이 오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지요.

그보다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함으로써 예수님께서는 고통을 받으시는 동시에 이 세상에 새 활력을 일으키신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분이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렸던 메시아의 모습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분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고,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돌아가시게 하는 엄청난 불충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지요.

세례자 요한이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느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셨을까요?

아니면 그냥 느낌에서 말씀하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세상의 어떤 악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를 갖출 수가 있었지요.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시련에 쉽게 좌절합니다.

그러나 이는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충분히 극복이 가능합니다.

부족한 나의 믿음을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주시길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