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에세이

죽은 이의 미소 23회

망인(亡人)의 자세2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간에, 5개월 동안 누어서 투병하던 막달레나 할머니가 위독하다고 하여 달려갔더니 막달레나 할머니는 또렷한 정신으로 우리에게 고통을 호소하였다.
“얼마나 아파야 죽습니까?” 라며 매우 힘들어 하였고, 몸에 열은 없는데도 몹시 덥다고 호소하였다. 막달레나 할머니의 몸을 만져보니 끈끈하게 진땀이 배어있었는데 그는 우리의 손길이 너무 뜨겁다며 우리가 만지는 것을 괴로워하며 싫어하였다. 상태를 보아 이틀은 더 투병하실 것 같아 우리는 기도만 해주고 돌아왔는데 예상대로 이틀 후에 막달레나 할머니는 운명하였다.

 

수시를 하며 살펴보니 고인의 몸은 등과 엉덩이에 손바닥 두개만큼의 넓은 욕창이 심하게 나서 생살이 빨갛게 드러나 있었다. 간병하는 사람이 환자의 자세를 자주 돌려가며 바꾸어 주면 욕창이 덜할 수도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며, 알콜에 적신 솜으로 등을 가볍게 닦는 데도 살가죽이 삶은 감자껍질 벗겨지듯, 술술 벗겨지므로 조심스럽게 수시를 해야 했다.
임종 전에 막달레나 할머니가 “얼마나 아파야 죽습니까?” 라고 우리에게 고통을 호소하던 생각이 났다.
죽음의 사경을 겪을 때, 욕창은 벌레에 물린 정도에 불과하여 고통도 아니라고 하니 죽음의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나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은 후, ‘지옥에 가면 어쩌나!’ 해서가 아니라 ‘죽을 때 얼마나 아플까?’하는 생각으로 죽음이 두려운 마음 없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일 죽는다 해도 서운한 마음 한 점 없이 받아드릴 마음이 준비되어있어 행복하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