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의 미소 35회
눈 위에 쌓인 홍시 감
글:차 엘리사벳
밤새도록 눈이 내리다가 새벽녘에 눈이 그쳐, 다행으로 생각하며 새벽 3시에 집을 나서려는데 눈이 20센티도 넘게 내려있었다. 새벽길이라 아무도 지나가지도, 치우지도 않은 눈길을, 발목이 잠길 정도로 푹푹 빠져가며 가려니까 길이 미끄럽기도 하지만 발이 젖게 되자, 산에 오르다가 동상이라도 걸릴까봐 염려가 되었다.
‘고인(故人)의 고향에도 눈이 많이 와있으면 장례를 치르는데 어려움이 많을 텐데!’ 하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도착해보니 묘 자리가 평지(들판)라 그리 염려할 정도는 아니었고, 남쪽지방이라 서울보다 기온도 높아 그리 춥지도 않았다.
묘 자리까지 운구하는 길, 도중에 큰 감나무가 있었다.
눈이 쌓인 감나무 밑에는 빨갛게 익어서 홍시가 되어, 저절로 떨어진 감이, 군데군데 수북이 쌓여있었는데 아무도 지나간 발 자욱이 없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 감나무를 가리키며 유가족이 하는 말은
“저 감나무는 관리하는 이도 없이 해마다 저렇게 감이 떨어져도 아무도 안 주워가고 새들이 먹고 남는 것은 모두 썩어버리는데 썩은 감이 너무 많아 처치가 곤란하답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면 우리가 먹어도 되나요?”라고 우리 봉사자 한 명이 묻자,
“그럼요, 저래 뵈도 엄청 달고 맛있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장례예절이 끝나거든 와서 감을 먹어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와 같은 생각을 우리 봉사자들도 똑같이 하고 있었는지, 예절이 끝나자 모두들 쏜살같이 감나무 밑으로 가는 것이었다.
티 검불 하나 없이 새하얀 눈 위에 소복이, 이중 삼중으로 군데군데 쌓인 빨간 홍시를 한 개 주워 먹어보니 꿀보다 더 달고 맛이 있어서, 입 안에서 씹을 사이도 없이 넘어가, 나는 그 자리에서 5개를 단숨에 먹었더니 배가 불렀다.
“아이고, 나는 이제 점심은 다 먹었다. 감이 맛이 있어 더 먹고 싶어도 배가 불러 못 먹겠네!”
“매일 먹는 밥인데 점심밥이야 안 먹으면 어때! 이렇게 맛있는 것을 오늘 아니면 언제 또 먹어보겠어. 배불러도 실컷들 먹어!”
“그런데 이 아까운 것을 어떻게 두고 가지! 비닐봉지라도 있으면 싸가지고 갈 텐데 말이야!”
나이가 제일 많은 임원한명은 집에 가지고 가서 먹겠다며 손수건을 꺼내 몇 개를 싸가지고 가방에 넣어 가져왔는데 서울에 와서 보니 홍시 감은 흔적도 없고 가방 속의 물건들이 홍시에 섞여 범벅이 되어서 곤죽이 되어 가방속안의 물건들을 모두 버리게 되었다고 투덜거렸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