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의 미소 51회
수의(壽衣)2편
글 : 차엘리사벳
우리 친정어머니는 56세 되던 해에 친구들과 둘러앉아 삼베로 수의를 지으셨는데 우울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나에게 엄마 친구들이 나를 위로해 주셨다.
“ 아이 구, 따님, 걱정하지 말아요. 수의를 해두면 오래 산대요.”
엄마는 수의를 종이박스에 신문지를 깔고 방충제(나프타린)를 넣어서 장롱 위에 올려놓고 2년에 한번씩 방충제를 갈아주며 생전에 할 일을 다 한 듯이 흐뭇한 미소로 수의가 든 박스를 바라보곤 하셨다.
엄마친구들이 한 명, 두 명 세상을 떠나고 엄마혼자 남게 되자, 80세쯤 되셨을 때, 엄마는 아끼던 새 이불과 옷들을 나누어 주기도 하면서 돌아가실 준비를 하시며 하느님께 빨리 데려가 달라고 기도한다고 하셨다.
“내 나이 85세나 되었는데! 험한 꼴 보기 전에 빨리 죽어야 할 텐데! 하느님이 왜 나를 안 데려가시지!”
“엄마, 요즘에는 70세는 아이, 80세는 젊은이, 90세는 중년, 100세는 노년이래요. 엄마는 젊은이예요.”
“아이고, 끔찍한 소리 하지마라. 수의를 장롱 위에 두면 오래 산다더니 아무래도 수의를 장롱 위에 두어서 내가 오래 사는가보다. 수의를 내려 놓아야겠다.”
엄마는 장롱 위에 있던 수의를 내려 장롱 아래 칸에 넣어두셨다.
엄마는 90이 가까운 고령인데도 젊은이 못지않게 건강한 몸으로, 성당에서 ‘레지오’ ‘안나회’ 등 활동을 계속하시면서도 매일 죽을 타령만 하셨다.
“내가 오래 살면 안 되는데! 험한 꼴 보기 전에 빨리 죽어야 할 텐데! 아무래도 수의 때문인가 보다. 수의를 좀 더 아래로 내려놓자.”
엄마는 또다시 장롱 안에서 수의를 꺼내 방바닥에 내려놓고 한 쪽 구석으로 밀어 놓았다.
하느님께 빨리 데려가 달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엄마는 결국 94세에 병석에 누우셨고 그 해, 우리 신랑이 77세에 뇌출혈로 쓰러져 엄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으나 엄마에게는 알리지 않기로 형제자매들과 합의하여 비밀로 하였다.
“아범은 지금도 많이 바쁘니?”
“그럼요. 식구들 얼굴 마주치기도 어려워요.”
“그래 바빠야지! 내가 빨리 죽어야 할 텐데 하느님이 왜 나를 안 데려가실까?”
사위를 1년 먼저 보낸 엄마는 95세에 세상을 떠나셨고, 나는 더 이상 엄마에게 거짓말을 안 해도 되었는데 엄마는 천국에 가서 사위를 보고 놀라셨을 것이다.
“아니, 자네는 왜 여기에 와있나?” 라고 하면, 농담 잘하는 우리 신랑은
“아이 구, 장모님자리 맡아 놓으려고 제가 조금 먼저 왔지요.” 라고 할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