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의 미소 54회
봉사할 때는 귀천을 가리지 않는다
글 : 차엘리사벳
아침도 굶고 새벽 3시부터 서둘러 집을 나섰다. 고인을 발인하여 버스 안에서 운구예절을 하려니까 동이 채 트지도 않은 새벽이라 버스 안이 어둠침침하여 글씨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 운전기사에게 불을 켜달라고 하니까 불을 켜면 밖이 잘 안보여 사고가 날 수 있다며 켜주지 않았다.
아침을 걸러 허기진 배를 나는 허리띠로 조이고 가까스로 40분도 넘게 걸리는 긴 예절을 젖 먹던 힘까지 다 하였는데 나뿐아니라 우리 봉사자들의 기도소리도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기도와 마침성가를 모두 마치고 장거리를 5시간이나 걸려 달려왔다.
마을 주민들이 몰려나와 故人을 마을로 못 들어오게 하여(고인이 마을로 들어오면 마을에서 초상이 발생한다는 속설 때문에,) 할 수없이 관을 동구 밖으로 돌아 묘지로 갔다.
동네 어르신 한 분이 너무도 조용한 분위기를 깨면서 상주들에게 말했다.
“아니, 초상집이 왜 이렇게 조용해! 울음소리가 들려야지! 울음소리가….”
“호상인데 뭘 울어, 악상이라야 울지!”
“그래도 곡소리가 들려야 어울리지, 이렇게 조용하면 세상 떠난 어르신이 얼마나 섭섭하겠어!”
상주들의 곡소리는 없었지만 우리의 기도소리와 성가소리가 산과 계곡을 메아리쳐 고인을 바라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듯이 보였다.
모든 예절을 마치고 마을사람들과 함께 우리는 중식을 먹기 위해 마을로 내려왔다.
유가족들과 친척들은 방안으로 들어가 미리 차려져 있는 음식을 먹기 시작 하였고 돗자리가 깔려있는 마당에는 동네사람들이 모두 앉아 술잔을 나누며 식사를 시작하였으나 우리 봉사자들이 앉을 자리는 여기저기 기웃거려도 끼어들 자리가 없고 우리에게 식사하라고 말 한마디 건네는 이도 없었다.
아침도 굶고 나왔는데 점잔빼다가는 점심밥도 굶게 될 것 같아 우리는 주방 쪽으로 가서 물었다.
“우리는 어디서 밥을 먹어야 하나요?”
“그걸 우리에게 물어보면 어떻게 해요.”
“앉을 자리가 없는데요.”
“서울 양반들인가 본데 식사를 하시려면 밥 가지고 가셔서 적당한 자리에 가서 드세요. 밥과 국을 드릴 테니 받아가세요.”
다른 사람들은 상다리가 휠 정도로 음식도 여러 가지를 놓고 먹는데 우리는 저마다 겨우 국그릇에 숟가락 하나 달랑 얹어 밥과 국을 양손에 들고 나와 앉을 만한 자리를 물색하느라 두리번거리던 중, 어떤 이는 길가의 풀 팥에, 어떤 이는 햇볕을 피해 처마 밑 맨 땅에, 어떤 이는 큰 돌 위에 겨우 엉덩이만 걸치고 밥을 국에 말아 무릎 위에 놓고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었다.
나는 축축한 풀밭이나 처마 밑 맨땅에 앉는 것도 마음이 내키지 않아, 밥과 국그릇을 든 채 서서 생각에 잠겼다.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산에서 우리의 모습과 행동을 지켜보면서 아마도 우리가 직업으로 장례를 치루는, 천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 웬 지 마음이 찝찝하였다.
맨땅이나 돌 위에 불안전하게 앉아서 아무 불평도 없이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는 우리 봉사자들이 너무도 고맙고 존경스러워, 나도 잡념을 버리고 밥을 국에 말아, 서서 꾸역꾸역 먹기 시작하였더니 우리 봉사자 한 명이 내 모습을 보고
“아이고, 앉아서 드세요. 그렇게 서서먹다간 체하겠네요.”
연령회 봉사를 하면서 푸대접을 받은 적이 처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모든 일을 무사히 마치고 상경하는 마음이 편해서인지, 버스 안에서 우리 봉사자들은 의자에서 떨어질 정도로 몸을 늘어뜨리고 코고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