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말씀 , 알림목록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어떤 책에서 본 이야기 하나를 적어 봅니다.

한 고등학생이 있었는데, 이 학생은 학교 성적도 매우 우수했으며, 집안에서도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모범생이었습니다.

그는 혼자 공부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진도를 따라갈 수 있기 때문에 학교 수업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번은 별 생각 없이 친구들 앞에서 ‘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게 되었데요.

이 말을 전해 들은 친구들은 “거짓말이지? 너 공부 잘한다는 것 티내려고 그런 말하는 거지?” 라고 말하면서 정말로 안 다닐 것 인지를 물었을 때, 그는 엉겁결에 “거짓말 아니야. 나에게는 학교 수업이 의미가 없어. 따라서 학교를 그만둘 거야.” 라고 대답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말을 들은 친구들이 다른 많은 친구에게 이야기를 했고, 담임선생님에게도 전해졌으며 급기야 부모님에게도 전해진 것입니다.

이제 분위기는 자퇴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되고 말았으며, 결국 이 학생은 자퇴를 했다고 하네요.

바로 아무 생각 없이 내 뱉은 말 한마디가 자신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학교생활을 그만 둘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말 한마디가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모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신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즉, 겨자씨와 누룩과 같다고 말씀하시는데요.

그렇다면 하늘나라가 겨자씨와 누룩처럼 조그맣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느님의 다스림은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느껴지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힘이 있음을 바로 모든 이를 변화 시킬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말 한마디가 사람을 망하게도 또한 살리게도 하는 것처럼, 하늘나라의 신비는 겉으로는 아주 작고 미미해 보여도 우리들의 삶 전체를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더없이 크신 일들은 거창한 형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바로 우리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평범한 장소와 시간에 하느님의 신비는 은밀하게 드러나도 있습니다.

내 가족 안에서, 내 친구들 안에서, 그리고 우리가 우연히 만나는 모든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 나라는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드러나는 하느님 나라는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을까요?

이제 우리들의 삶 안에 숨어 있는 그 하늘나라의 신비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 일상의 삶 안에 숨어있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찾는 오늘이 됩시다.

 

날개를 받쳐 주는 바람 (‘행복한 동행’중에서)

1985년 미국에서 열린 어느 철인 3종 경기에 눈길을 끄는 참가자들이 있었다. 아버지의 이름은 딕, 뇌성마비를 앓는 아들은 릭이었다.

컴퓨터로 말을 배우고 간신히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릭은 “달리고 싶다.”라고 썼다. 릭은 이때 처음으로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말했다. 아버지 딕은 그때부터 아들과 달리기를 시작해 각종 육상 대회에 출전했고, 드디어는 철인 3종 경기까지 진출하기에 이르렀다. 모두가 무모한 일이라고 말렸지만 딕은 오로지 릭의 말만을 마음에 새겼다.

“달리기를 할 때면 제 몸의 장애가 사라지는 것 같아요.”

철인 3종 경기에서 부자는 세계 최강의 철인들 틈에 끼어 허리에 고무배를 묶고 3.9Km 바다를 헤엄쳤고, 자전거를 타고 180.2Km의 용암지대를 달렸으며, 휠체어로 42.195Km 마라톤을 완주했다. 헤엄치고 달리는 동안 아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버지가 끌어주는 보트나 자전거에 누워 있는 것뿐이었다.

“아버지가 없었다면 할 수 없었어요.”

“네가 없었다면 나는 하지 않았을 거다.”

이들은 철인 3종 경기에 6회 도전했고, 마라톤을 64차례 완주했으며, 달리기와 자전거로 6,000Km에 이르는 미대륙을 횡단했다. 1993년 특수교육 분야에서 컴퓨터 전공으로 학위를 받은 아들 릭은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내 날개 아래를 받쳐 주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