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2022.02.01 설날 합동 위령미사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 한 해도 주님의 사랑 안에서 모두가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옛날에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화난 목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어떤 자매님께서 연세 지긋하신 형제님을 향해서 화를 내고 있는 것이었지요.
“왜 차를 여기에 주차시키는 거예요?”
사실 그 자매님 가게 앞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옆 가게 앞에 잠시 주차를 하시려는 듯한데, 이 자매님께서 큰 소리를 지르며 막는 것이었지요.
더군다나 주차하려는 곳의 가게 셔터에는 “오후 4시 이후 주차 금지”라고 적혀 있었고, 그때의 시간은 오후 2시였기 때문에 주차를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 자매님은 “입장 바꿔 생각해보세요. 자기 집 앞에 남의 차가 주차되어 있으면 기분이 좋겠어요? 여기가 주차장은 아니잖아요. 당장 차 빼세요.”라면서 그 형제님을 당황스럽게 했습니다.
그리고 “가뜩이나 장사 안 되는데 이렇게 차까지 세워서 막으면 어떻게요?”라는 말까지 던지시더군요.
제가 보기에는 주차로 인해 장사가 안 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마음 때문에 장사가 안 되는 것은 아닐까 싶더군요.
솔직히 정 많은 집에 가고 싶지,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는 집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이 모습을 봐서 그런지 이 가게에 저부터도 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침 이 길을 지나가며 보았던 다른 사람들도 역시 이 가게를 선호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말로 자매님의 말씀처럼 입장 바꿔 생각해서, 내가 주차할 곳을 못 찾아 당황스러워 한다면 도움을 주는 사람을 원할까요? 아니면 나를 방해하는 사람을 원하겠습니까?
남의 탓을 외치기보다는 먼저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복음의 말씀처럼 언제 올지 모를 종말의 날을 잘 준비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어떤 젊은이가 신부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신부님, 사람이 죽는 준비를 하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그거야 몇 분이면 되지.”
“하느님 나라 가는 준비를 하는 데는 얼마나 걸립니까?”
“그것도 몇 분이면 될 것 같네. 예수님 곁의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는 잠깐 예수님을 믿고도 구원받지 않았나?”
그러자 젊은이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괜찮겠군요. 저는 향락이나 즐기다가 마지막에 가서 예수님을 믿으렵니다.”
그리고 자리를 뜨려는 젊은이에게 신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아, 내가 한 마디 묻겠네. 자네는 언제 죽을지 알고 있나?”
“그야, 모르지요.”
“바로 그것이 문제일세.”
그렇습니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라면서 경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설날입니다.
임인년 새해를 맞이하는 오늘, 우리에게 항상 깨어 준비하라는 예수님의 덕담을 기억하면서, 사랑을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준비가 쌓여 나갈 때, 하늘나라는 나에게 그리 멀지 않은 나라가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많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의 사랑을 가장 많이 불러일으키는 일을 하라.(아빌라의 데레사)
행복은 돌고 돈다(‘좋은생각’ 중에서)
어느 날 한 노부인이 저명한 심리학자 밀턴 에릭슨을 찾아와 말했다.
“나는 우리 집 요리사가 해 주는 음식을 먹고, 집안일도 집사가 다 해 줘요. 그저 정원 가꾸는 일만 하는데도 행복하지 않아요. 너무 외로워요.”
“그럼 정원에서 가꾼 꽃을 마을 사람들의 생일날 몰래 선물해 보세요. 익명으로 축하 카드도 쓰고요. 그러면 얼마 안 가 행복해질 겁니다.”
그날 이후 부인은 새벽에 일어나 생일을 맞은 사람의 집 앞에 제비꽃이 심긴 화분과 카드를 놓고 왔다. 두 달이 흐르자, 마을에 ‘천사가 선물한 꽃’ 이야기가 돌았다. 석 달이 지난 어느 밤, 노부인이 에릭슨에게 전화를 걸었다.
“살면서 이렇게 기분 좋은 크리스마스는 처음이에요. 문 앞에 선물이 잔뜩 쌓였지 뭐에요. 꽃씨와 카드, 목도리… 이 많은 걸 누가 보낸 걸까요?”
“정원에 뿌린 씨가 꽃이 되어 돌아오듯, 부인이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준 씨앗이 꽃이 되어 돌아온 겁니다.”
마을에는 노부인 못지않게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생일날 뜻밖의 선물을 받자 누군가 자신을 챙겨 준다는 생각에 더는 쓸쓸하지 않게 된 것. 꽃을 선물한 사람이 노부인이라는 걸 안 사람은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렸다. 그리고 노부인이 뿌린 씨앗은 ‘살가운 이웃’이라는 기쁨으로 되돌아왔다. 관심은 햇살과 같아, 어둡고 차가운 마음 한구석을 빛과 온기로 가득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