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강론] 2022.02.02 주님 봉헌 축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프랑스 파리의 어느 성당에서 어려운 이웃을 위한 헌금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서양에서는 봉헌 바구니를 돌립니다.

아무튼 그 봉헌 바구니가 어느 눈먼 사람 앞에 멈추었습니다.

그 사람은 주변의 사람들도 잘 아는 사람으로 단 1프랑도 헌금할 수 없는 형편의 가난한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자그마치 27프랑을 접시에 세어서 놓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옆 사람이 “당신이 어떻게 그 많은 돈을?” 하고 묻자, 눈먼 사람은 웃으며 이렇게 말하더래요.

“저는 눈이 안 보이지요. 그런데 제 친구에게 물어보니 저녁 때 불을 켜는 비용이 일 년에 27프랑이 든다고 하더군요. 나는 불을 켤 필요가 없으니 일 년이면 이만큼의 돈을 저축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모은 거죠. 그래서 예수님을 몰라 어두운 곳에 있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참 빛이 비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들의 봉헌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합니다.

자기에게 쓰고 남은 것만을 봉헌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봉헌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늘 부족하다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특별히 주님 봉헌 축일을 맞이해서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하고 다시 제자리에 위치시켜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 인간을 위해서 희생 제물로 봉헌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세례 성사를 통해 우리 역시 주님 앞에 봉헌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봉헌에는 예수님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은 철저히 하느님의 뜻에 맞게 생활하신 반면, 우리들은 나의 뜻에만 맞게 살아가면서 제대로 된 봉헌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제대로 봉헌하지 못했음을 반성합니다.

그 이유를 제 방 안에서 아주 쉽게 찾게 됩니다.

즉, 너무나도 많은 물건들이 방 안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짐이 많을 수 있을까요?

물론 필요에 의해서 구입한 것도 있지만, 필요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관심사로 인해 주님께 제대로 된 봉헌의 삶을 살지 못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만을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의 유혹에서 벗어나서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제대로 된 봉헌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것은 수양이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이다.(플루타크)

 

 

이백 원의 가치(안소현, ‘행복한 동행’ 중에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신없이 밥을 푸다가 떨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보니, 식사를 마친 손님 한 분이 연거푸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매끼마다 인사를 잊지 않는 이들이 많지만, 유독 그분 모습이 잊히지 않는 것은 까만 얼굴 위로 흘러내리던 눈물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일요일 아침에 열리는 이곳은 청량리 근처에 위치한 무료 급식소, 아니 유료 급식소이다. 단돈 이백 원에 제공받은 소박한 식사가 그에게는 그렇게 눈물 나도록, 목이 매여 떨리도록 감사한 한 끼였나 보다.

 

거리의 노숙인들, 한 끼 제대로 챙겨 먹기 힘든 일용직 노동자들, 외로운 독거노인들이 이곳의 손님이다. 달랑 여섯 개의 탁자만 놓인, 누추하기 짝이 없는 곳이지만 2시간 반 동안 많게는 500명 정도의 손님이 길게 늘어서 순서를 기다린다.

 

처음 이곳과 연이 닿아 봉사하러 간 날, 이백 원은 뭐 하러 받나 생각했다. 하루는 처음 들른 이 하나가 “좋은 일 하려면 공짜로 주지, 이백 원은 뭐 하러 받아?”하고 까칠한 말을 뱉었다. 그 말에 수사님께서 버럭 성을 내셨다.

 

“이 밥이 어떤 밥인데!”

 

턱없이 적은 금액이지만 굳이 그 돈을 받는 이유는 이 밥이 ‘공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백 원은 그들이 떳떳하게 손님으로 행세할 수 있는 식대인 동시에, 그 식사 한끼에 담긴 많은 노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기도 하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그분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는 무엇에 그렇게 간절히 감사해 보았는가 생각해 본다. 주머니 속에 동전 두 개가 짤랑짤랑 소리를 낸다. 그 이백 원의 가치를 짚어 보며 나는 조용히 말한다. 행복하다고, 그리고 감사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