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2022.03.27 사순 제 4주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한 청년이 홧김에 실수로 살인을 범해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청년의 아버지는 주지사를 찾아가 간절히 애원을 했지요.
“제 아들이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원래는 착한 아이입니다. 성격이 급해서 그러한 실수를 했으니 부디 사형만은 면하게 해주십시오.”
주지사는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겸손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이 사형수 역시 본성은 착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면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사면장을 안주머니에 넣고 감옥에 갇힌 청년을 찾아갔지요.
“여보게, 정말로 만약인데……. 자네가 사면을 받아 자유로운 몸이 된다면 지금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주지사의 이 말에 청년은 매우 화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두 사람을 죽일 것입니다. 사형을 선고한 판사와 내게 불리한 증언을 한 증인. 이렇게 두 사람을 말이지요.”
이 말을 들은 주지사는 과연 어떤 행동을 했을까요?
이 사형수에게 사면장을 주었을까요?
아닙니다.
사면장을 가슴에 그대로 품은 채 조용히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만약 이 사형수가 남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면이 되어 다시 자유의 몸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에 대한 원망으로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결국 사형수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모릅니다.
그 사랑을 오늘 복음의 탕자의 비유에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둘째 아들이 자신에게 돌아올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합니다.
사실 아직 결혼하기 전이었으니, 유대의 율법을 따른다면 많아봐야 17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살아계시는데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는 경우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사랑으로 아들이 원하는 대로 해줍니다.
유산을 미리 받은 둘째 아들이 잘 살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아쉽게도 방종한 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방종한 생활은 결국 둘째 아들을 궁지로 몰아넣습니다.
재산을 탕진한 것은 물론 그 고장에 기근이 들어서 곤궁에 허덕이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살기 위해서 유대인들이 가장 경멸하는 돼지를 치는 일까지 하게 됩니다.
특히 하도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열매 꼬투리라도 배를 채우기를 바라는 그의 모습은 말할 수 없이 천해진 상황이라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극도로 비참한 상태에 빠진 사람은 두 갈래의 길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절망에 빠지거나 아니면 또 다시 일어서 보자는 희망적인 용기를 갖는 것…….
특히 절망에 빠진 사람은 자살하거나 인생을 포기하고 막가는 악인의 길을 걷게 됩니다.
바로 둘째 아들 역시 극도의 비참한 상태에서 절망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게 됩니다.
아버지 안에서 희망적인 용기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그를 살릴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둘째 아들과 같은 상황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여러분은 어떤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주님의 사랑에 대한 강한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절망에 빠질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랑의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은 결국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을 잊지 마십시오.
만약 모르겠다면, 그 사랑을 기억하기 위한 노력을 아까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사랑 안에 영원한 생명을 주는 사면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마세요.
사랑이란 이름의 아들(이도환, ‘마음을 밝혀 주는 인생의 지도’ 중에서)
한 나라의 왕이 자신이 다스리는 작은 마을을 방문했다. 그 마을은 사람들 간의 빈부 격차가 매우 심했는데, 부자는 가난한 마을사람들을 게으름뱅이라고 욕했고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뱃속에 기름만 잔뜩 낀 비곗덩어리라고 비난하며 서로를 헐뜯었다.
왕은 자신을 위해 마련된 연회가 끝날 무렵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의 사랑하는 왕자가 볼일이 있어 당분간 이곳에 머물며 지내게 되었으니 부디 내 자식을 사랑으로 잘 대해 줄 것을 부탁하노라.”
왕은 마을 사람들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끝내 왕자가 몇 살이며 어느 곳에서 누구와 살고 있는지 밝히지 않고 그 마을을 떠났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은 어느 아이가 왕자인지 몰라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했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다 보니 어른들끼리도 서로 헐뜯지 않았고 마침내는 서로 웃으며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마을은 점차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곳으로 변해 갔다.
일 년이 지난 뒤 왕이 다시 그 마을을 방문했을 때 마을 촌장이 말했다.
“왕이시여, 얼굴도 모르는 왕자님 때문에 우리 마을이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이제 왕자님이 누구인지 밝히시고 궁으로 데리고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촌장의 말을 들은 왕은 한바탕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궁궐에 잘 있는 왕자를 또 어디로 데려간다는 말인가. 내가 이곳에 남겨 놓고 간 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자식일세. 그 자식이 잘 커서 이 마을을 이토록 아름답게 만들었는데 내가 어찌 데려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