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강론] 2022.04.10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미켈란젤로는 그림을 그린 뒤 서명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실 미켈란젤로도 처음에는 서명을 하였는데, 서명을 하지 않게 된 이유가 있다고 하지요.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성당의 ‘천지창조’를 완성하였을 때 흡족한 마음으로 서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서명까지 마치고 성당 밖을 나서면서 찬란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눈부신 햇살과 푸른 자연으로, 넋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웠지요.

세상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고, 또 어떤 화가도 그려낼 수 없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었습니다.

순간 그는 자신의 교만스러운 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창조하시고도 서명을 남기지 않으셨는데, 나는 기껏 작은 벽화를 하나 그려놓고 이름을 남기려고 했다니…….”

미켈란젤로는 성당으로 되돌아가 자기의 서명을 지웠습니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더 이상 그림에 서명을 남기지 않았답니다.

미켈란젤로의 이 이야기를 보면서 저의 교만 역시 깨닫게 됩니다.

솔직히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할 수 있는 것들이 바로 나의 재주와 능력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지요.

나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 때문에 얻은 재주와 능력이었는데 그 사실을 까마귀 고기를 먹은 것처럼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감사하지 못했고, 그래서 주님의 뜻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평범한 일상의 삶에서 감사할 수 있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제가 신학생 때 반복된 생활에 지루함과 답답함을 느꼈던 적이 있었습니다.

기도-공부-운동이 계속해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이었지요.

그래서 특별한 일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특별한 일이 생겼습니다.

글쎄 운동을 하다가 제가 친구를 다치게 한 것입니다.

친구는 곧바로 병원에 실려 갔고, 저는 걱정과 불안으로 무척 초조했습니다.

한 4~5시간 동안 그 친구에 대한 걱정 때문에 기도도 되지 않고 공부도 되지 않았습니다.

저녁 늦게 그 친구가 치료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지요.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일상의 삶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말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그러나 그 환영의 목소리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는 저주의 목소리로 바뀝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감사의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기들의 필요에 맞는 예수님을 원했고, 그 필요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사람들은 반대자가 되었던 것이지요.

일상의 삶에서부터 특별한 삶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주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반대자가 아닌 주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의 모습으로 변화될 수가 있습니다.

이제 오늘부터 거룩한 성주간이 시작됩니다.

이 성주간을 보내면서 더욱 더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래서 감사할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완벽함이란 더 이상 더할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생텍쥐페리).

 

 

고맙다는 한마디(이성숙, ‘고맙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중에서)

 

“손님, 도착했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택시에서 내리며 운전기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뭐가 고마워요?” 운전기사의 반응은 의외로 삐딱했다. 순간 당황했지만 웃음을 잃지 않고 대답했다. “무사히 데려다 주셨잖아요.”

 

그제야 운전기사의 표정이 스르르 풀어졌다. “사실은 바로 전 손님 때문에 기분이 나빴거든요. 손님이 갑자기 고맙다고 하니까 뜬금없이 들리더라고요. 감사합니다. 다음 손님은 편하게 모실 수 있겠어요.”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멀어져 가는 택시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무심코 건넨 고맙다는 한마디가 어떤 사람의 하루를 바꿀 수 있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그렇다면 그 하루가 미래를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그날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마법의 주문처럼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다. 저녁 무렵, 좌탁을 주문한 공방에서 전화가 왔다. “저, 죄송합니다. 어제 공방에 화재가 나서 제작이 늦어질 것 같습니다.” 화재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아니에요. 경황없을 텐데 먼저 연락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일 손님이 오는데 수소문해서 상을 구할 시간을 주셨잖아요.” 전화를 끊은 뒤 누구에게 상을 빌릴지 생각하는데 공방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저희 창고에 좌탁이 하나 있는데요. 우선 그거라도 쓰시겠습니까? 괜찮으시면 바로 보내겠습니다.”

 

이것 참! 전화를 끊고 웃음이 나왔다. 감사의 힘이라는 게 이렇게 서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거였나? 무엇보다 내 마음이 여유롭고 행복해진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