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강론] 2022.05.01 부활3주일. 생명주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어떤 아이가 할아버지에게 새총을 선물을 받았습니다.

신이 난 이 아이는 사촌동생과 함께 숲속에 들어가 열심히 새총을 쐈지요.

그러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것입니다.

실망해서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데, 뒤뜰에 무리를 지어 놀고 있는 오리들이 보이는 것이 아니겠어요?

충동적으로 새총을 겨누어서 쐈습니다.

그런데 돌멩이가 정확히 오리의 머리에 맞아 즉사하고 만 것입니다.

이 오리는 할머니가 애지중지하는 것이기에, 사촌동생과 함께 얼른 헛간에서 삽을 가지고 와서 땅에 오리를 묻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어요.

사촌동생은 이를 가지고 계속해서 괴롭히는 것입니다.

사촌동생은 자신이 할 일을 가지고 “오리 알지?”하면서 자기 대신 할 것을 명령했지요.

한 주일 동안을 계속해서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다보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지요.

결국 할머니에게 자기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이 아이를 안아주면서 말씀하셨어요.

“난 벌써 알고 있었단다. 네가 새총으로 오리를 쏘던 바로 그 순간 창문으로 보고 있었거든. 넌 그때 너무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구나. 이 할민 그때 벌써 너를 용서했단다. 너를 사랑하니까. 하지만 나는 네가 언제까지 사촌동생의 종노릇을 할 것인지 궁금했단다.”

죄란 것은 이러한 것입니다.

우리를 예속시키는 것이 바로 죄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죄가 그 파괴력을 상실할 때가 있습니다.

앞서 꼬마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고해성사를 보기 전에는 불안함과 죄책감에 많이 힘들지만, 고해성사를 보고 난 뒤에는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이후 제자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아마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죄책감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에게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베드로는 그대로 호수로 뛰어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숨고 싶었겠지요.

식사를 마치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그런데 이 부분은 원문으로 보면 예수님의 물음과 베드로의 대답에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에는 ‘사랑한다’라는 동사가 하나이지만, 그리스어에는 세 개의 동사가 있습니다.

먼저 Eros(에로스) 사랑은 남녀 간의 육체적 사랑을 의미하고, 두 번째로 Pileo(필레오) 사랑은 친구 간의 우정처럼 give and take(주고받는) 사랑입니다.

마지막 하나는 agafe(아가페) 사랑으로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내 한 몸을 다 바쳐 헌신하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의 질문에 있어 먼저 아가페를 물어 보십니다.

“너는 나를 아가페(αγαπας) 하느냐?”

그런데 베드로의 대답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필레오(φιλω)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답변합니다.

다시 한 번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아가페 하느냐?”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역시 “주님을 필레오 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는 죄책감 때문에 ‘아가페’라는 말이 감히 나오지 않았겠지요.

이 마음을 예수님께서는 아셨을까요?

이제 마지막 질문은 “네가 나를 필레오 하느냐?”고, 즉 친구 간의 우정 깊은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주님의 배려에 얼마나 죄송하면서도 감사했을까요?

그래서 슬퍼하며 말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필레오 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앞선 이야기에서 꼬마가 ‘오리’라는 말에 큰 죄책감을 갖고 그 굴레에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처럼, 베드로 역시 ‘사랑’이라는 말에 큰 죄책감을 갖고 그 굴레에서 나오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배려 깊은 사랑으로 베드로는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베드로는 결국 필레오의 사랑을 아가페의 사랑으로 승화시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세상에 힘 있게 전하고 순교까지 한 것입니다.

주님 덕분에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우리입니다.

문제는 주님 앞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의 나약한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용기 있는 자만이 원하는 것을 취할 수 있다고 하지요.

용기 있는 자만이 주님의 용서도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 아가페의 사랑을 위해 주님 앞에 힘차게 나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기도는 죄를 예방하고 이미 지은 죄를 용서해 주는 두 가지 효과가 있다(세익스피어).

 

 

자신을 용서하라

 

베르나르도 신부는 예수와 얘기를 나눈다는 여인에 관한 소문을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기도를 통해 자신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얘기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진정 하느님과 대화를 나눈다고 믿었던 것이다.

 

신부는 냉소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희망과 열정으로 성직을 시작했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눈은 의심이 짙은 안개로 뒤덮이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마리아란 여자도 사기꾼이라 의심하고 그녀를 시험해 보기로 작정했다. 그는 그녀에게 가서 물었다.

 

“당신이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다는 게 사실이오?”

 

“네.”

 

“그러면 날 위해 예수님께 질문해 줄 수 있겠소?”

 

“그러죠.”

 

“다음에 그 분과 얘기를 나누게 되면 내가 신학교에서 저지른 죄가 무엇인지 물어봐 주시오.”

 

신부는 그러면서 자신이 사기꾼을 궁지에 몰아넣었다고 생각하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물어봐 드리죠. 다음 주에 오시면 예수님의 대답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일주일 뒤 신부는 다시 마리아를 찾아갔다.

 

“예수님과 대화를 나눴소?”

 

“네.”

 

“그럼 내가 신학교에서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물어봤소?”

 

“네.”

 

“그래, 그분이 뭐라고 하셨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