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강론] 2022.06.26 연중 제13주일. 교황 주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좋은 일을 하고 있다면 계속하는 것이 옳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과감하게 그 삶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타성에 젖은 삶은 이제 버려야 합니다.

즉, 주님께서 보시기에 옳지 않은 것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세상의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 시간의 흐름에 아무 의미 없이 맡기면서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뭐. 힘들게 왜 그렇게 살아?’라는 한심한 말들만 앵무새처럼 외쳐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고자 한다면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지요.

심지어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는 것도, 가족들에게 작별인사 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당신을 따라야 함을 이야기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그 어떤 것도 주님의 따르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윤리적으로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말씀을 하면서 까지,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가 되지 말고 오로지 하느님만 바라보며 살아야 함을 주님께서는 힘주어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때 오늘 제2독서의 말씀처럼 부르심 안에서 진정한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이 부르심은 누구 위에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것이라고 바오로 사도는 전해주십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부르심은 부자 되는 부르심이 아닙니다.

또한 높은 자리에 올라서는 부르심도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대접받고 인정받는 부르심 역시 아닙니다.

오히려 남을 섬기는 가운데 주님으로부터 인정받아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는 부르심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철학자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너무 자주 ‘나’라는 말은 크게 하고, ‘당신’이라는 말은 작게 이야기한다.”

진정한 사랑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내가 더욱 더 강조되고, 나만을 더욱 더 사랑하는 우리들, 그래서 주님의 부르심에 부합하게 살지 못하는 우리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나를 버리고 남을 배려할 때, 나를 깨끗이 잊어버리고 남에게 몰두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주님의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할 수 있으며, 주님께서 주시는 참 행복의 길에 들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은 고결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허리를 숙이고 상처와 눈물을 닦아 주는 것입니다(마더 데레사).

 

 

삶이란 선택의 연속입니다(‘좋은 글’ 중에서)

 

한 생애 사는 동안에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갈등을 겪습니다.

 

이 길을 선택하면 과연 옳을지

아니면 저 길을 선택해야 현명할지

명확하게 판단하지 못할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의 선택을 함으로써

얻는 결과를 미리 예측하고 가늠하여

올바른 선택을 하기란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는 선택이 항상 올바르고

현명한 선택일 수는 없지만

최선의 선택이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살다 보면 분명히 옳지 못한 선택임을

알면서도 선택해야 하고

가지 말아야 할 길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가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비록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게 되더라도

그 여정에서 겪는 아픔과 시행착오를 통해

우리는 많은 지혜와 깨달음을 얻습니다.

 

선택의 연속인 우리의 삶에

비록 오늘의 선택이 잘못한 선택일지라도

그 잘못을 밑거름으로 삼아

가야 할 올바른 길을 깨닫고

내일의 현명한 선택에 도움을 얻습니다.

 

선택 앞에 자유로운 우리 삶이지만

항상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며

겸허히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롭고 현명한 마음의 눈을 가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