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강론] 2022.09.25 연중 제26주일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사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도 있듯이, 내가 베푸는 만큼 그대로 받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산의 높은 지역에 어머니와 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은 자신이 잘못한 일 때문에 어머니에게 심하게 꾸중을 듣고 산으로 올라가서 절벽 벼랑 끝에 서서 어머니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그는 반대편 산을 향해 “나는 당신을 미워해요! 나는 당신을 미워해요!”하고 고함을 쳤습니다.

그러자 계곡 반대편에서 산울림이 울려왔습니다.

“나는 당신을 미워해요! 나는 당신을 미워해요!”

이 소리에 깜짝 놀란 소년이 어머니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는 흐느끼면서 “나를 미워한다고 소리치는 나쁜 사람이 누구예요?”하고 물었지요.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다시 절벽 벼랑 끝으로 올라가서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하고 크게 외치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자신이 외치는 대로 산울림이 되어 되돌아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산울림은 아들이 한 말을 부드럽게 반복해서 들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껴안고 말했지요.

“아들아, 이것이 인생의 법칙이다. 네가 주는 대로 돌려받는단다.”

이 인생의 법칙을 우리 역시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부자는 그 법칙을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받기만 하는 데에 익숙했지, 고통 속에 있는 나자로를 향해서 전혀 베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이 세상의 삶과는 정반대로 저승에서 큰 고통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제2독서의 사도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나눔과 사랑의 계명이며, 희생과 봉사의 계명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고 약속하십니다.

내가 주는 대로 돌려받는다는 인생의 법칙을 기억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인생의 법칙은 이제까지 절대 예외가 없었습니다.

 

사랑을 시작했을 때, 비로소 삶이 시작된다(스퀴데리).

 

 

화장실 간 게 무슨 죄라고(공지영,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중에서)

 

친구들이 온다는 날이면 하는 수 없이 장을 보러 갔다. 그날은 장날이 아니라서 장터는 한산했다. 밭에서 화학 비료 안 주고 키운 듯한 구부러진 오이며 윤기 나는 작은 고추를 작은 보자기에 쌓아 놓고 파는 할머니들이 주르르 앉은 곳으로 다가갔다. 오이를 가리키며 사려고 하자 옆에 앉은 할머니가 이 오이의 주인이 친구인데 화장실 간 것 같으니 잠깐 기다리란다.

 

잠깐은 10분을 흘러가도록 지나가지 않았다. 부엌에 찬거리를 잔뜩 벌여 놓고 온게 마음에 걸려 도시에서 장 볼 때처럼 “그럼 이분 것 말고 할머니 오이를 달라.” 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말했다. “사람이 그러면 못써요. 화장실 간 게 무슨 되라고 내가 그 사람 것을 가로챈단 말이래요?” “가로채려는 게 아니라, 제가 시간이….” 할머니는 이미 나를 외면했다. 단단히 잘못한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두 할머니의 오이를 몽땅 샀다.

 

나는 군청 옆의 컴퓨터 가게로 갔다. “컴퓨터를 바꿔야 할 거 같아요. 팔 년이 넘어서.”라고 말했던 가게다. 고장이 잦은 컴퓨터를 들고 가면 작은 부품을 여러 번 무료로 바꾸어 주어서 큰맘 먹고 한 말인데 땀 흘리며 30분 만에 컴퓨터를 수리해 주던 사장님이 말했다. “아직 쓸 만한 걸 얻다 버리려고 그래요?”

 

대체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하는 걱정이 앞선 것은 내가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 성당이 보였다. 한때 저기에 가서 훌쩍거리며 “하느님, 세상이 무섭고 싫어요.” 했는데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