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강론] 2022.11.02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종교인들이 모여서 하는 회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대표를 맡고 있었던 분께서 회의의 시작에 앞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장례식을 거행하고서 회의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씀하세요.

“오늘 장례를 치를 분은 여러분에게 굳이 설명할 필요로 없을 정도로 아주 유명하신 분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 각자 한 사람씩 이 옆방에 가셔서 관속을 들여다보시고 그를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인들은 대표의 인도에 따라 줄을 지어 옆방으로 가게 되었지요.

그들은 관 속을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관을 바라보며 아주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어떤 종교인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요.

그렇다면 누구의 장례식이었을까요?

관 속에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사실 관 속에는 사람이 있지 않았답니다.

대신 그 자리에 거울이 깔려 있었습니다.

따라서 관 속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그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볼 수밖에 없었고,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곧 누구나 언젠가는 죽어서 관속에 들어가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이 죽음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 안에서 영원히 살고자 해도 결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잠시 머물렀다가 가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헌하는 위령의 날은 바로 이 점을 깨닫게 합니다.

특별히 돌아가신 분들의 죽음.

그러나 그분들의 죽음이 단순히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누리는 영원한 생명임을 떠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그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위해서 더욱 더 지금 삶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에는 주먹을 쥐고 있지만, 죽을 때에는 주먹을 편다. 왜 그럴까? 태어날 때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움켜주려 하기 때문이고, 죽을 때에는 모든 것을 뒤에 남은 사람들에게 주고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실에 공감하며 동시에 어떻게 이 세상 안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지를 깨닫게 됩니다.

즉, 모든 것을 움켜쥐는 욕심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나눔과 봉사를 통해서만이 주님께서 맡겨주신 이 세상 안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행사로 끝나는 위령의 날이 아닌, 진정으로 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건강한 육체에 깃든 건강한 정신을 달라고 기도해야만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난 대담한 정신을 달라고 기도하라(유베날리스).

 

 

우리는 누구나 죽음이라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최인호, ‘산중일기’ 중에서)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키에르케고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제목의 철학 책을 썼듯 인간은 누구나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기 시작한다. 인간은 누구나 감기나 암이나 치질과 같은 뚜렷한 증세가 있고 고통이 있는 질병들은 병이라고 받아들이면서도 죽음이라는 만성병은 병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은 감기나 암이나 우울증 같은 병들이 사실 죽음이라는 불치병을 앓는 동안에 일어나는 합병증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인간은 암으로 죽지 않는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병에 의해서 죽을 뿐이다. 인간이 암이나 뇌졸중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죽음의 병을 피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너무나 당연한 이 죽음의 병에 대해서는 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이 지닌 생명은 그 자체가 죽음이라는 병균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간은 죽음을 재수 없는 것, 불길한 것,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될 수 있는 한 이를 잊어버리려 한다. 즐겁고 명랑하고 행복하게 살 인생에서 굳이 비극적인 죽음의 그림자를 새삼스럽게 생각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애써 부정한다. 인간의 가장 큰 비극은 두려움과 공포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공포야말로 인간이 지닌 원죄이다. 그러나 이 공포와 불안의 심연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