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강론] 2023.07.09 연중 14주일 강론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가끔 담배를 많이 피우신 분이 죽음을 맞이 하시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만일 그가 그렇게 많이 담배를 피우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돌아가시지 않았을 거예요. 정말로 꼴초였거든요.”

‘과연 그럴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을 결정하는 것이 정말로 담배 하나일까요?

어쩌면 우리의 죽음을 오랫동안 준비하시는 분은 하느님이 아닐까요?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마태오 10,29-30에도 나오듯이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도 하찮게 여기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께서 과연 담배 하나로 ‘너의 인생은 여기까지다.’라고 결정하실까요?

물론 하느님께서 소중하게 여기시는 우리의 몸인 만큼, 우리의 몸을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건강하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어떤 한 가지에 나의 모든 것이 걸려 있다는 듯한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이런 모습은 고통과 시련이 찾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 우리는 ‘~ 때문에’라는 말과 생각으로 모든 것을 결론짓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 이유가 부정적으로 변하면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을 거부하는 모습으로 나아가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게 되는지 모릅니다.

따라서 이런 모습보다는 우리를 너무나도 소중하게 여기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늘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멍에는 때로는 우리에게 너무나 커다란 짐을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 멍에는 적당히 무거워야 이를 멘 이들이 오히려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멍에가 때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커다란 고통과 시련처럼 보이지만, 우리를 성장시켜주기 위한 주님의 큰 선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부족함과 나약함으로 이겨내기가 쉽지 않지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당신께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당신께서 그 짐을 가볍게 해주겠다고, 그래서 편안한 안식과 위로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를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시는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칠 수 있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님도 철부지들인 우리들에게 하느님의 지혜가 드러난 사실(예수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도 아니었습니다)에 대해 감사의 기도를 바치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어떤 일이든 상관없이 감사하면서 주님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한 우리가 될 때, 분명 그분 안에서 커다란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용서하면 우리는 포로에게 자유를 주게 된다. 그러고 나면 우리가 풀어준 포로가 바로 우리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된다(루이스 스메데스).

 

 

성공은 하느님의 이름이 아니다.

 

‘나와 너’의 저자 철학가 마르틴 부버는 ‘성공은 하느님의 이름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성공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성공은 무엇일까요? 곧 이기적 이윤 추구를 바탕으로 위대한 경력을 쌓는 사람들의 성공을 말합니다. 이러한 성공은 하느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신다는 것이지요.

 

사실 이렇게 세속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많은 수가 내면으로 매우 빈곤하다고 합니다. 영적인 가난이 외적인 부유에 가려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성공을 하느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없는 삶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아닐까요? 사람의 일, 세상의 일에만 집중하다보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면서 행복과도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야말로 진짜 성공임을 기억하면서, 성공하는 오늘을 만들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