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에세이

[죽은 이의 미소 1]

머릿 글

 

어느 날, 거울가게(유리점) 앞을 지나다가 거울 속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눈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웬 노인이 거울 속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서있는 것이다. 나는 놀라 그를 자세히 보니 그가 바로 나였다. 나는 도망치듯 거울에서 벗어났다. 어느새 자신도 몰라 볼 정도로 변한 내 모습을 보고 왠지 마음이 우울했다.
‘야, 엘리사벳, 너 저렇게 될 때까지 뭘 했니?’
나는 자문자답하며 지난 일들을 돌이켜보았다.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일들,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돌이키고 싶지 않은 일들이 필름처럼 뇌리를 스쳤다. 내가 자랑할 만큼, 남들이 감동할 만큼 잘한 일이 단 한 가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살아오는 동안 희로애락의 에피소드는 있었기에 그 중 한 가지 체험담(선종봉사)을 글로 쓰기 위해<제목:죽은이의 미소>펜을 들었다.

 

 

[죽은이의 미소 1회 ]

 

나는 흰 가운을 갈아입고 시신이 안치되어있는 영안실로 갔다. 머리까지 푹 씌워진 흰 보를 살짝 들치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손을 잡으며 고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안녕하세요? 하늘나라에 가시도록 기도해 드릴게요, 사랑해요!”

내가 금호동성당 선종봉사회에 입회(1992년)한지 26년이 되었다. 47세에 들어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900여명이 넘는 장례를 치르었다.
요즈음은 대부분 장례를 병원에서 치르지만 1990년대에는 대부분 집에서 장례를 지냈다.
그 당시, 사람의 죽음은 시와 때가 없어, 갑자기 임종하였다는 연락을 받게 되면 쿨쿨 자던 야밤이건, 송편이나 만두를 빚던 대낮이건, 김치를 담그다가도 밀어놓고 밤 12시건, 새벽 3시건,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즉시 달려가 시신을 수습해야 했다.
사람이 죽으면 신체의 모든 기능이 멈추기 때문에 죽은 이의 몸은 곧 싸늘해지고 몸이 굳게 강직되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장례를 대부분 병원에서 치르기 때문에 병원에서 고인을 직접 수습하여 안치실(냉동실)에 보관하지만 예전에는 집에서 치루기 때문에 여름이건 겨울이건 시신을 시상판에 올려놓고 방안에 사흘 동안 안치해 둔다. 죽은 사람의 몸은 계절에 따라 부패하는 속도가 다른데 겨울에는 방안에 난방만 안하면 크게 염려할 일은 없는데 특히 무더운 삼복더위에는 시신이 빨리 부패되므로 장례를 치르는 일에 어려움이 많았다.

 

-다음에 계속-

 

차엘리사벳(금호동성당 연령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