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에세이

[죽은 이의 미소 8]

 묘이장 작업 5편

 

윤달이 든 해는 우리 연령회를 봉사자들의 활동이 언제나 바쁘다.
한 집안의 어르신이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후손들의 정신적인 부담을 덜어주고 후손들이 사이좋게 만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묘 이장을 하게 되었다.

 

36기가 들어갈 수 있는 가족 납골 봉안당을 구해놓고, 전국적으로 분산되어있는 선조들의 묘를 한데 모아 묘 이장을 하도록 하였다. 사망한 기간이 모두 다른 묘를 가족들과 친척들이 각자 묘를 맡아 시신을 들어내어 화장장에서 화장하여, 가족 납골 봉안당이 있는 장소로 모이도록 하였다.

 

우리는 12구의 유해가 준비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현장에 가보니 3구의 유해만 와있었다. 다른 유해도 곧 오겠지! 라고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웬걸 1시간이 넘어서야 1구가 도착 되었고 또다시 1시간도 더 넘어 1구가 도착 되는 것을 보고 우리는 그만 지쳐 쓰러질 것만 같았다. 11월의 늦은 윤달이라 바람이 차고 산등성이에 지어진 납골 봉안당 주위에는 바람막이도 없고 앉을 자리도 마땅치 않아 차가운 풀밭에 앉아 있으려니까 엉덩이도 시리고 바람도 차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다량의 유해를 이장하는 봉사는 처음이기에 예상도 없이, 또한 이토록 오래 걸릴 줄 모르고 예절에 필요한 성물만 달랑 준비해온 것이다.

 

먼발치에 사람의 모습만 보여도 유가족들의 친척이 오는가 하여 모든 사람의 눈빛은 총알처럼 쏘아보는데 다른 사람일 경우 실망하는 눈빛이 그야말로 그들이나 우리나 가엽기 그지없었다. 그러다가 정말로 가족들이 나타났을 때는 너무도 반가워서 유가족들과 우리는 “와아” 하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들이었지만 ‘꾸욱’ 참아야 했다. 유해가 도착하면 유족들은 곡을 해야 하는데, 유족들이나 우리가 환희의 함성을 낸다면 큰 실수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장례봉사 기간에는 유가족들이 있는 곳에서는 절대로 웃지 않기로 되어있기 때문에 웃을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기쁨을 참을 수가 없어 뒤돌아서 서로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으며 입이 귀에 걸렸다. 이때는 우리 봉사자들뿐만 아니라 유가족들도 그런 눈치였으나 웃음 띤 미소로 서로 악수하며 얼싸안는 모습으로 대신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흐뭇했다.

 

 

죽은 이들의 모임

 

 

12구의 유해가 도착하는 시간은 기절할 정도로 오래 걸렸는데 친척들을 오래간만에 만나서 기뻤는지, 기다리던 고인을 만나서 기뻤는지는 모르나, 만날 때마다 서로 반기는 모습들이, 우리도 그랬지만 유가족들은 점점 더 열렬해지며, 마치 수십 년 동안 타국에 떨어져 있다가 만난 듯이 기뻐들 하였다.

 

12구의 선조들 유해를 한곳에 모아놓고 바라보니 마치 고인들이 함께 모여 대화를 하는 것처럼 보였고, 유해가 거룩해 보였다. 육신이 썩어서 한 줌의 재가 된 유해도 모아놓고 보니 이토록 아름다워 보이는데 영원히 죽지 않는 우리의 영혼은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해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자 나는 갑자기 숙연하고 두려워지며 때 묻어 있을 내 영혼에 대한 책임감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비록 하루가 기절할 정도로 힘들고 어려웠으나 영혼에 대한 아름다움과 책임감을 새삼스럽게 깨우치자 힘들었던 것이 삽시간에 사라지고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절실하게 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