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의 미소 11회]
죽음이란 시기가 없다
차억순 엘리사벳(연령회 회장)
우리 금호동 성당의 연령회가 잘 되어 있고 장례식을 잘 치러준다는 소문 때문에 예전에는 노인이 있는 교우들 가정은 이사를 가면서도 교적을 옮기지 않았고, 초상이 나면 장례식을 금호동성당 연령회에서 치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임원들은 의정부, 일산, 부평, 수색 등, 타 지역까지 가서 장례식을 치르는 사례가 많았다.
사람이 죽을 때 기왕이면 봄이나 가을 에 죽는다면 유가족이나 봉사자들의 어려움도 덜 할 텐데 삼복더위나 한겨울에 죽으면 선종봉사하기가 정말 너무 힘들었다.
어느 겨울 날 눈이 하얗게 쌓인, 영하 20도의 강추위에 경기도 파주에서 매장을 하게 되었다. 살을 예이는 듯이 몰아치는 찬바람이 땅에 쌓인 눈을 마치 하늘로 되돌려 보내려는 듯이 날리며, 세차게 눈보라가 치는 날이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코털에 성에가 하얗게 끼고 내쉴 때는 하얀 입김으로 상대방의 얼굴이 안보일 정도였다.
너무 추우니까 몸은 사시나무 흔들리듯 떨렸고 음성도 얼었는지 목소리마저도 떨려나왔으며 아래. 윗니도 “딱” “딱” 부딪쳐 혀가 물리면 끊어질 정도로 떨렸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들 추우니까 유가족들도 세워진 옷깃 속에 목은 자라목 들어가듯 움츠린 모습으로, 빙설위에 서서 꽁꽁 언 발을 동동 구르며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하관예절을 하려는데 동상이 걸릴 정도로 손이 시리고 곱아서 책장을 넘기기도 어려웠으며 눈이 쌓인, 빙판에서 떨고 있는 나의 몸은 장례를 치르는 고인만큼이나 몸이 식어있었다. 세차게 몰아치는 강풍에 넘어지면 광중(시신을 묻기 위해 파놓은 구덩이)에 하관해놓은 시신위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기에 성수예절을 할 때 나는 매우 조심스럽게 발을 옮겨 딛어야 했다.
사실, 성수예절은 형식일 뿐, 딸아 놓는 성수는 이미 얼어있었고 성수채도 꽁꽁 얼어서 뿌려지지도 않았다. 성수를 가방에서 새로 꺼내어 딸아 놓아도 금방 얼어붙어서 스테인레스로 된 성수채는 즉시 얼음방방이로 변하고 관위에는 성수가 단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래도 예절대로 형식을 다 갖추어, 성수예절도 하고 치토예절도 하였다, 치토예절을 할 때도 미리 파놓은 흙이 추위에 얼어서 굳어져 삽으로 잘 퍼지지 않아 일꾼들이 흙을 조금씩 가족들에게 긁어 담아 주어서 하기는 했는데 실제는 일꾼들이 치토를 한 셈이나 다를 게 없었다.
너무도 추워서 얼른 예절을 마치고 내려가 따듯한 곳에서 점심을 먹으면 몸이 좀 풀어지겠거니 생각하였는데 점심을 준비한 장소도 묘에서 멀지않은 근처 묘지주변에 바람막이도 없이 위에만 가려진 천막아래 테이블 몇 개만 연결해놓고 의자도 없이 서서 밥그릇을 들고 먹어야했다. 국(육개장)은 부글부글 끓고 있는 솥에서 바로 퍼주니까 뜨끈해서 좋았는데 몇 수저 먹는 동안 금방 국이 식어버리자, 국그릇 주위에 기름이 하얗게 굳어 붙었고 기름기가 묻은 입언저리도 뻣뻣해져 먹는 것도 힘들었다.
내가 유달리 추위를 잘 타는 편이기는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큰 추위에 힘들게 장례를 치루어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