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의 미소 34회
밤 12시에 찾아온 손님
글:차 엘리사벳
밤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누우려는데 누군가 대문을 요란하게 두드렸다.
초상이 발생하면 전화로 연락이 올 텐데,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한편, 겁이 나기도 하여, 나는 십자성호를 그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구세요?”
“저애요, 바오로!”
같은 본당 교우가 만취가 되어 서 있었다.
“형제님, 이 밤중에 웬일로?”
교우 바오로는 길이가 20센티 쯤 되는 붕어 한 마리가 든 흰 비닐봉투를 들어 보이며
“제가 오늘 낚시를 갔었는데, 잡은 고기를 가져왔어요!”
바오로는 술 냄새를 풍기며 혀가 말린 목소리로 1시간도 넘게, 횡설수설 반복하며 돌아갈 생각을 안 하였다.
“이제는 밤도 늦었으니 돌아가셔서 쉬어야지요?”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도 집에서는 기다릴 테니 이제는 돌아가세요.”
밤 2시가 다되어, 안 가려는 것을 내쫓듯 보내놓고 나니 미안한 마음 그지없었다.
그런데 이튼 날 바오로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연락이 와서 나는 너무도 놀랬다. 그가 갑자기 사망 할 줄 알았더라면 그의 이야기를 좀 더 경청하며 부드럽게 대해줄 것을, 내쫒듯 보낸 것이 마음에 걸렸다.
장례를 치르면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교우들로부터 알게 되었다. 그는 동네에서 이웃에게 소문난 말썽장이며 악동이로 소문이 나있었고, 이웃까지 들릴 정도로 바오로의 집안은, 부부가 또는 부모와 자식이 서로 싸우는 소리가 그칠 날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아들도 아버지와 성격이 다를 바 없어, 아버지와 싸우기 일쑤였는데 집을 나가 떠돌이로 지내며 문제도 많이 일으켰다고…
죽은 바오로의 모습은 생전의 모습보다 더 일그러져 수심에 찬 얼굴이었다. 염을 하면서, 생전에 좀 더 그를 보듬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고인의 얼굴을 평화스럽게 매만져주려고 애썼으나 이미 냉동실에서 굳어진 그의 모습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입관을 하고 나서 가족들이 참회하도록 도움이 되는 훈화를 해주었더니 아들이 펑펑 우는 것이었다.
발인 하는 날 새벽 4시에 출발하여 고인의 고향인 땅 끝 마을, 고흥 선산으로 가서 매장을 하게 되었는데 고향에서도 이름난 악동이었는지 수군거리며 바라보는 눈치가 심상치 않았다. 하관을 하고 떼를 입히는 동안 바오로의 아들은 나에게 와서 조용히 말했다.
“회장님이 저를 울리셨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아픈 마음으로, 이토록 많이 울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입관할 때 회장님 말씀 듣고 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 말씀 마음에 새기며, 앞으로 어머니 모시고 잘 살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바오로의 장례를 치른 후, 6개월 쯤 되어 바오로의 부인을 길에서 만나게 되었다.
“아이고, 회장님, 그러지 않아도 만나고 싶었는데 잘 만났네요! 우리 영감 죽고 나서 우리 아들이 사람되었네요.”
“사람이 되다니요? 장례식 때 제가 본 아드님은 분명 잘생긴 사람이었는데요!”
“아이고, 사람도 사람 나름이지요! 우리 아들은 망나니 중에도 개망나니였어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개망나니라니요! 아드님이 들으면 서운하겠네요.”
“참말이라니까요. 지 말이 거짓이면 지손에 장을 지져요. 그런데 즈그아범 죽고 나서 백팔십도로 달라져 어미한테 용돈도 팍팍 주고 어찌나 잘하는지! 첨엔 꿈인가! 생신가! 했는데 지금까지 변함이 없으니 지가 팔자가 폈지요.”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나를 통하여 성령께서, 잠자고 있던 아들의 영혼을 깨워주신 거라는 생각이 들어 하느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