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이의 미소 10회]
노자돈 부족해 저승 못가겠네!
예전에는 장례를 치르게 되면 대체로 고인을 매장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고인의 고향인, 선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선종봉사를 하다 보니 전국적으로,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해남이건, 고흥이건, 땅 끝 마을까지 다녔는데, 장거리를 다녀오는 날은 귀가시간이 밤 열두시가 넘을 경우도 허다했다.
발인을 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집을 나서는데, 밤사이에 백설같이 흰 눈이 제법 많이 내려, 발을 내딛을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하는 소리가 어린 시절에 꽈리를 불던 소리처럼 재미있게 들렸다. 하지만 낭만적인 그 기분도 잠시뿐, 발인하여 고인의 고향인 선산로 가게 되면 눈 때문에 산을 오르기 매우 힘들 텐데! 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걱정이 앞섰다.
장거리이기 때문에 새벽에 어둠침침할 때 발인하였는데 고인의 고향마을 입구까지 왔을 때는 해가 거의 중천가까이 떠올랐고 빈속으로 집을 나온 내 뱃속에서는 어서 빨리 밥 들여보내라고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계속 나와, 나는 창피하여 주위 사람들이 들을까봐 허리띠를 졸라 매었다.
동서남북 사방이 온통 새하얀 눈으로 덮여 전경이 아름다운 동네였다. 마을에서 장지까지 길이 좁아 영구차가 가까이 들어갈 수가 없으므로 마을사람들은 고인을 장지까지 운구하기 위하여 상여를 만들어, 모든 준비를 다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구차에서 고인을 운구하여, 꽃으로 아름답게 장식한 상여에 모셨다. 여섯 명의 상두꾼이 상여를 어깨에 메고, 목청 좋은 요령잡이가 상여 위에 올라서서 종을 “딸랑” “딸랑” 치며 구성지게 선창을 하면서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북망산천 가는 길이 왜 이다지 멀고, 먼가?” 하고 선창을 하면 상두꾼들이 후렴으로
“어~허 어~허”
“어~허 어~허” 하며 거북이보다 더 느린 걸음으로 한발, 두발, 나아가면 유가족들은 곡을 하며 상여 뒤를 따라갔다. 유가족들이나 친척들, 그리고 동네 어르신들은 선창을 하는 요령잡이의 구성진 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진정 고인을 잃은 슬픔 때문인지, 곡을 하거나 소매 자락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따라가고 있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그저 마음이 조급하기만 했다.
‘어휴, 배도 고프고 추워 죽겠는데 저래가지고 언제 장지까지 간담!’ 하는 생각으로 지루하기만 했다. 어디 그뿐인가, 가다가는 상여를 내려놓고 멈추어 서서 노자 돈을 내놓으라고 성화를 하는데 그럴 때마다 고인(故人)의 자녀들이나 사위들이 서로 눈치작전을 벌리다가 할 수 없이 어느 한 자녀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 상여에 꽂아 놓으면 상두꾼들은 상여를 들고 가는데 몇 발짝도 못가서 또 내려놓고는 고인이 노자 돈이 부족하여 저승을 못가고 있다면서 더 큰소리로 종을 딸랑거리며 상주들을 조른다. 상주들이 많으니까 광중을 파놓은 장소까지 가는 동안, 상두꾼들은 노자 돈을 받아내기 위해 유가족들에게 애를 먹이다가 장지에 도착했다.
땅을 파놓은 광중에 고인을 하관해놓고 우리의 상장예절이 끝난 후에도 새끼줄로 감은 대나무를 땅에 꽂아놓고 달구질(묘를 발로 밝으며 메우는 작업)을 하면서 또 유가족들에게 노자 돈 내놓으라고 애를 먹이면 유가족들은 차례차례 지폐를 꺼내어 새끼줄로 감은 대나무사이에 돈을 끼워 성황당처럼 주렁주렁 매달아놓았다.
산에서 모든 장례예절을 마치고 하산 할 때는 눈부신 햇살에 기온이 올라 양지쪽에는 눈이 녹아 길이 드러나 있었는데 눈이 녹으니까 진흙으로 된 길이 너무도 질퍽거려 발걸음을 옮기기가 어려웠다. 진흙 속에 구두가 박혀 진흙이 발등까지 올라오기 직전이었고 또한 진흙에 박힌 신발을 ‘죽도록 사랑해서 못 놔주겠다!’ 라는 듯이’ 진흙에 붙은 구두는 빠져나오지 않고 발만 ‘쏙’ 빠져 나와 난감했다. 어렵게 신발이 빠져나오면 사람머리통만큼이나 큰 진흙덩어리가 신발에 붙어 올라와 발이 천근, 만근이 되어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었다.
무거운 성물가방과 책가방을 들고 어렵게 진흙길을 빠져나와 눈이 녹은 양지쪽의 풀 섶에 가서 때 아닌 트위스트를 추듯이 발을 비비적거리어 겨우 진흙을 떼어내고 마을에 내려와서 늦은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런데 제때에 밥을 안줘서 내 뱃속이 삐쳤는지 아니면 위장이 닫혔는지, 엄청 많이 먹을 것처럼 허기가 졌었는데 막상 밥을 먹으려니까 입안이 깔깔하고 목으로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