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의 미소 12회]
모닥불에 빵꾸난 코트
한밤중, 두세 시에,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깨면 초상이 났으니 빨리 나오라는 전갈일 경우가 허다했다. 검은 정장차림으로 집을 나서게 되면 어두운 밤길이라 검은 색이 잘 보이지 않아 밤에는 차들이 속력을 내기 때문에 교통사고가 많이 나므로 차도를 건널 때는 조심해야 했다. 검은 목도리로 눈만 내놓고 얼굴을 온통 감싸고 나서면 달리는 자동차소리도 잘 안 들리기 때문에 초상 치르러 나가다가 내 초상까지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엄동설한에 꽁꽁 얼어붙은 땅을 인부들이 겨우 관이 묻힐 정도로 파놓고 고인을 하관 하였는데, 유가족들 중 한 자녀가
“우리엄마 추운데 묻으면 안돼요! 우리엄마 추워서 안돼요, 안돼!” 하며 인부의 팔을 붙잡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무던히도 속을 썩이던 자녀라고 들었기 때문에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니까 살아계실 때 잘했어야지!’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도 그녀와 다름없는 존재라 참았다.
한겨울에는 지역에 따라 너무 추울 때는 광중(관이 묻힐 자리)을 파는 인부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묘에서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모닥불을 피우는데 그럴 때는 봉사하는 우리도 몸을 녹일 수가 있어 좋았다. 간혹 인부들이 먹으려고 모닥불 속에 감자나 고구마를 묻어놓을 적이 있는데 우리는 그 구운 감자와 고구마가 너무도 먹고 싶었으나 군침만 삼키며 모닥불에 몸을 녹일 수 있는 것만도 고맙게 생각했다.
예전에 우리 친정아버지께서 “모닥불과 며느리는 볶을수록 죽는다.”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불을 쬐던 우리 임원 한 명이 불길을 좀 더 세게 하려고 나무를 자꾸 올려놓으며 뒤적거리니까 불길이 점점 약해지더니 거의 죽어가는 것이었다.
모닥불은 몸을 녹일 수가 있어 좋은 점도 있지만 매우 조심해야 할 점도 있다. 강추위에 너무도 추워서 몸을 빨리 녹이려고 모닥불가까이 다가가서 몸을 돌려가며 앞뒤를 쪼이다가 모닥불에 코트 뒤 자락이 타는 줄도 모르고 있던 임원한명은 구입한지 얼마 안 된 새 옷을 태운 적도 있었다.
나는 모닥불에 구운 고구마를 먹어보지 못하고 군침만 흘리던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아 ‘초상이 나면 감자를 가지고 가서 구워먹어야지!’하고 벼르다가 초상이 나자 감자 몇 개를 집에서 준비해 갔는데 그 날은 모닥불을 피우지 않아, 구운 감자를 맛볼 수가 없었고 그 후에도 몇 번 감자를 가지고 갔는데 모닥불이 없어 한 번도 모닥불에 구운 감자를 맛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하느님께서
“엘리사벳, 쓰잘대기없는 짓 하지 말고 기도에나 전념해!.”라는 계시로 알고, 모닥불에 구운 감자는 포기하였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