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에세이

죽은 이의 미소 14회

폭설2편

전국적으로 눈이 너무 많이 내려 길이 매우 미끄러워서 평지를 걷기도 매우 조심스러운 날, 발인하여 장거리를 가게 되었다.
폭설이 내려 길도 험한데 고령(85세)의 마르타가 봉사자들이 가지 말라고 설득하는데도 부득이 고집을 세우며 따라나섰다.
“산이 가파럽고 길이 너무 험하데요.”
“염려 붙들어 매라니까! 내 다리 멀쩡해!”
“산에 오르시다가 불상사가 생기면 우리가 욕먹어요!”
“험한 길 나오면 내가 오히려 당신들 업어나를테니까 내 걱정 말아요!”
우리는 그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 입씨름을 멈추고 동행을 하게 되었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인가(人家)도 없고 상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게 눈이 많이 쌓여있었고 산도 가파른데 눈이 많이 쌓여 길도 보이지 않았다. 운구하는 사람들도 이리저리 미끄러지며 힘들게 가파른 길을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관의 수평을 잡을 수가 없었다. 천주교의 운구방법은 하 쪽부터 나가므로 관속의 고인은 물구나무서기를 하면서 올라가는 셈이고, 우리들은 운구하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기어가듯이 올라갔다. 산은 상행보다 하행이 더 어려우니 내려갈 일이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내가 걱정했던 연로한 마르타도 산을 소리 없이 잘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묘지에서 인부들이 탈관을 준비하면서 소리친다.
“결혼 안한 사람이나 집안에 혼사를 앞둔 사람들은 멀리 자리를 피했다가 하관한 후 나중에 오십시오.” 라고 소리치자 참석한 동네 어르신들이
“뭣들 해, 빨리 자리를 피하지 않고…!”
우리 교회법에는 관계없는 일이었으나 유가족들 중에는 자녀들이 모두 미혼이었는데 그 말을 듣자 어르신과 친척들이 얼른 자리를 피하라고 밀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법에 대하여 언쟁을 벌리면 길어질 것 같고 또한 유족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씁쓸한 표정을 가족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예절을 마치고 우리임원들은 가족들보다 먼저 하행을 하게 되었는데 손을 잡으면 같이 넘어져 모두 다치게 된다며 각자 내려가기 시작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 주고 내려가니까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금방 지쳐버리고 두 명은 넘어지면서 쓸어졌는데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거의 다 내려가서 살펴보니 우리를 업고 가겠다던, 마르타가 보이지 않았다.
“마르타 할머니가 보이지 않네!”
“아이고, 넘어 지지 않고 내려오려고 정신 쏟느라 몰랐네! 이를 어쩌지?”
모두들 마르타가 보이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하였다. 나는 오던 길을 되돌아 단숨에 올라갔다. 처음 올라갈 때는 기어가듯이 올라갔는데 마르타를 찾아야겠다는 신념이 서자 올라가는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마르타는 유가족들이 있는 부근에서 내려올 엄두를 못 내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자 입이 귀에 걸리며 반가워하였다.

“넘어 지지 않도록 제가 손을 꼭 잡을 테니 마음 놓고 저를 믿고 내려가세요.”
“아이고, 구세주가 따로 없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
덩치가 나보다 두 배나 더 큰 마르타를 잡고 내려가는데도 불구하고 나 혼자 내려갈 때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힘들었는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전혀 힘들지 않게 무사히 산을 내려왔다. 비록 작은 마음이지만 사랑을 베풀면 주님이 도와주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체험하게 되었다.
(다음호에 계속)